[책마을] 코앞에 위기 닥쳤는데…아무것도 하지 않는 당신
거대한 회색 코뿔소가 당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2t에 육박하는 코뿔소를 저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코뿔소가 돌진해 오자 당신의 몸은 얼어붙는다. 지그재그로 움직이거나 부리나케 도망칠까? 크게 소리라도 질러 코뿔소가 겁을 먹게 만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을 떠올리지만 마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제자리에 꼼짝없이 붙어 있으면 절대 안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당신은 결국 가만히 있는 쪽을 선택한 거나 마찬가지다.

돌진해 오는 코뿔소를 피할 방도를 찾는 것은 리더들이 코앞에 닥친 위기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의 정치·경제 분야 싱크탱크인 세계정책연구소의 미셸 부커 소장은《회색 코뿔소가 온다》에서 개연성이 높고 그로 인한 충격이 큰 위험을 ‘회색 코뿔소’로 비유한다.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저자가 소개한 이 개념은 너무나 희귀해서 현실로 닥쳤을 때 그 충격과 파급력이 엄청난 재앙인 ‘블랙 스완’과 비교된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고 신호를 보내고 사람들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블랙 스완으로 알려진 2008년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2001년부터 금융시장에서 형성된 거품이 조만간 터질 것이라는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2004년 모기지 관련 사기가 만연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2008년 초 주택 압류 건수는 전례 없는 수준을 기록했다. 위기를 예견한 골드만삭스는 모기지 시장이 붕괴한다는 쪽에 승부수를 던지며 모기지 상품이 부도가 난다는 데 판돈을 걸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코닥, 폴라로이드, 노키아, 블랙베리 등의 기업들도 혁신 기술의 등장이라는 코뿔소에 짓밟혀 쓰러진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뻔히 보이는 위기 신호를 외면할까. 위험 신호를 일부러 무시하고 위기에 일찌감치 대응하지 않는 태도를 당연시하는 시스템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또한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위기를 알면서도 제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저자는 “조직이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경보를 울리는 안전창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