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리우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오혜리가 한국경제신문 독자들에게 추석 인사를 올리고 있다. 조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wizard333@tenasia.co.kr 한복 협찬=빛깔고은·더고은생활한복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리우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오혜리가 한국경제신문 독자들에게 추석 인사를 올리고 있다. 조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wizard333@tenasia.co.kr 한복 협찬=빛깔고은·더고은생활한복
“올림픽이 끝나면 가족과 여행도 가고, 좀 쉬려고 했어요. 그런데 금메달을 따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네요. 이번 추석에도 푹 쉬지는 못할 것 같아요. 하하하.”

지난달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태권도 67㎏급 국가대표 오혜리 선수(28).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바쁜 일정 속에서 지난 8일 한국경제신문사를 찾은 그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혜리는 전국체전에서 3년 연속(2010~2012년) 우승하는 등 저력을 갖춘 선수였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선배 황경선에게 밀렸고,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대표선발전을 앞두고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오혜리는 세계랭킹 1위인 프랑스의 니아레 하비를 접전 끝에 꺾고 금메달을 땄다.

“지금도 금메달을 땄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아요. 많은 국제대회에서 다양한 선수를 상대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를 믿어준 감독님 덕분에 큰 사고를 친 거죠.”

15년 동안 훈련장과 숙소를 오가며 시계추처럼 살아온 그에게 추석은 매년 10월께 열리는 전국체전을 앞두고 찾아오는 ‘잠깐의 쉼표’였다.

“시합을 코앞에 두고 합숙하다 명절 당일에야 집에 다녀오라고 허락하는데, 가기 싫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가족, 친척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다 보면 ‘나도 쉬고 싶다. 왜 난 이러고 살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올해는 그 잠깐의 휴식마저 반납해야 할 상황이다. 유명인이 된 덕에 인터뷰와 방송 출연 요청 등이 쇄도해 그의 휴대폰 일정표에는 명절 전날까지 일정이 빼곡했다.

“이번 추석에는 고향(강릉)을 찾아가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도 하고, 친구들과 밥도 한 끼 같이 먹고 싶어요. 가족과 송편도 빚고, 명절 음식도 같이 만들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겠죠?”

올 추석 연휴는 주말을 포함해 5일. 연차휴가를 사용해 최대 9일까지 여행을 떠나는 직장인도 많다. 그러나 경기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운동선수에게 그런 여행은 ‘그림의 떡’이다. 그에게 외국은 대회가 열리는 곳일 뿐이다. 리우에서도 경기만 하고 돌아오느라 관광은 엄두도 못 냈단다.

“2014년에 가족과 괌에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랑프리 출전 일정이 잡혀서 못 갔어요. 언니나 동생이 연휴에 맞춰 연차를 쓰는 게 부럽더라고요. 가까운 곳이라도 좋으니 가족과 같이 여행 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가족도 마음속으로 같이 올림픽을 준비했잖아요.”

추석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결혼 안 하느냐”는 집안 어른들의 잔소리다. “아직 결혼은 이른 것 같아요. 언니와 동생까지 딸만 셋인 집인데, 부모님은 어느 누구한테도 얼른 시집가라는 잔소리를 안 합니다. 오히려 저희가 결혼 얘기를 꺼내면 ‘엄마 곁을 빨리 떠나고 싶은 거냐’고 섭섭해 하세요.”

이상형을 물었더니 “센스 있는 남자가 좋다”고 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이나 ‘치즈 인 더 트랩’의 서강준처럼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읽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별그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다.

“해외 경기 땐 노트북에 드라마를 가득 채워서 가요. ‘별그대’는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네 번이나 봤죠. 시합 전날 드라마를 보면 엔도르핀이 생겨서 즐거운 기분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어요.”

늘 그랬듯이 그는 올해도 다음달 7일부터 충남 일대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출전할 계획이다. 훈련할 시간이 많지 않아 틈틈이 개인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부상 트라우마가 있어 무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혹시 결과가 좋지 않아 주변에서 ‘금메달 따더니 변했다’고 해도 절대 상처받지 않으려고요. 하하하.”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도 그의 발차기를 또 볼 수 있을까. 오혜리의 각오가 단단하다. “저는 참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을 믿습니다. 4년 뒤 올림픽도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잡아야겠죠.”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
한복제공=빛깔고은·더고은생활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