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도시 이야기 - 남원시] 지리산·섬진강 품은 호남 곡창지대…임진왜란 때 의병 1만명 충절 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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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본 남원
![일제강점기 남원 시내를 흐르는 요천변 모습](https://img.hankyung.com/photo/201609/AA.12544492.1.jpg)
예로부터 남원은 호남의 대표 곡창지대로 각종 물산이 풍부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호남의 행정 거점이자 풍광이 좋았던 남원엔 큰 객관(客館)이 있어 많은 사람이 여행길에 묵고 갔다. 남원은 호남지방에서 정자와 누각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
소설 춘향전의 배경으로 유명한 광한루(廣寒樓)는 조선시대 대표 문신인 황희, 정인지, 정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물 제281호로 지정된 광한루는 옥황상제가 머무른다는 궁궐인 ‘광한전’에서 이름을 따왔다. 남원으로 귀양 온 황희 정승이 지금의 요천변에 광통루(廣通樓)를 세웠고, 집현전 학사로 잘 알려진 정인지가 광한루로 이름을 바꿨다.
지리산과 섬진강으로 둘러싸인 남원은 왜구의 북상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고려시대 말인 1380년 이성계가 왜구를 격파한 황산대첩으로 유명한 황산(荒山)은 지금의 남원시 운봉읍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남원에선 의병장 조경남 등이 이끄는 의병들이 일어나 왜군의 북상을 막았다. 사적 제272호인 만인의총(萬人義塚)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을 지키기 위해 왜군과 맞서다 전사한 군인과 백성 1만여명을 합장한 무덤이다.
남원=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