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만 수석부장판사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에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만 수석부장판사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에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공은 파산부를 떠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소속의 한 판사는 20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한진해운과 관련해 “지금까지 파산부가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제부터는 채권단과 정부의 적극적인 자금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진해운을 법정관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발빠른 행보와 적극적인 회생 의지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이 접수된 지 27시간 만에 파산부의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법정관리 신청 당일 보전처분 및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리고 그 다음날 김정만 수석부장판사(사법연수원 18기)를 필두로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와 부산 신항만 컨테이너 터미널을 방문해 현장검증 등을 거친 뒤 내린 조치다. 김 수석부장판사는 “회사의 회생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청산보다 회생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했다.

파산부 소속의 모판사는 “법정관리 신청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자체적으로 파악한 내용이 많아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법정관리 개시 결정 후에는 이례적으로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에 신규 자금을 지원해달라는 공문도 보내면서 회사를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세계에서 속속들이 들려오는 하역 작업 재개 소식도 파산부의 공이 컸다는 것이 법원 주변의 평이다. 국내에 진출한 한 외국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법원이 잘하고 있는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파산부 판사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올해 7월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562개로 사상 최대치다. 특히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쏠림 현상이 심한데 한진해운을 포함해 450개사를 관리하고 있다. 판사 18명이 평균 25개 기업을 관리하는 셈이다. 파산부 관계자는 “우리 손에 기업의 운명과 수천, 수만명 임직원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탁탁 막힐 지경”이라며 높은 업무 강도와 부담을 토로했다.

이번 한진해운 건 또한 개시 결정을 내리기까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고 한다. 파산부의 또 다른 판사는 “보통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는 해당 회사가 신규자금조달 지원 계획까지 완벽하게 짜서 넘겨준다”며 “하지만 한진해운은 너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떠넘기기 식으로 넘어와 애를 많이 먹었다”고 밝혔다. 그 탓에 파산부는 국내 로펌에 직접 연락을 취해 각국의 외국 로펌이 해외법원에 압류금지 명령(스테이오더)을 신청하도록 해야 했다.

파산부의 유래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법정관리 시스템 정비를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내걸면서 파산부가 처음 꾸려졌다. 설립 초기에는 1~3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순환보직 시스템 탓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보완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김정만 수석부장판사는 대형 기업 회생 사건에 재판장으로 다수 관여하면서 기업 구조조정 경험을 쌓아왔다. 관련 논문으로 2013년 법학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