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언스의 그레이프 배리어 리프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여행객들.
케언스의 그레이프 배리어 리프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여행객들.
“여행작가가 패키지로 다니세요?”

여행작가로 먹고살려면 ‘죽이는’ 아이템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 트랙터를 타고 터키를 일주하거나 어머니와 함께 남미를 가로지르거나 직접 마을버스를 몰고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을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어째 나의 여행은 자꾸 초라해진다. 게다가 ‘하우 아 유?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밖에 안 되는 영어실력을 떠올리면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남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결국 ‘안전한’ 패키지 여행을 고르게 되는데 뻔한 일정과 뻔한 후기에 떠나기 전부터 살짝 실망스럽다. 무엇 하나 색다를 게 없는데 나 역시 케언스를 패키지에 가깝게 다녀왔다. 틈만 나면 나만의 여행을 떠나라고 떠들어대면서 말이다. 그래서 어땠냐고?

그레이프 배리어 리프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쿠란다 민속마을에 있는 새 공원에서 관광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쿠란다 민속마을에 있는 새 공원에서 관광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케언스라면 왠지 헤비급 이종격투기 선수 이름처럼 들린다. 펀치 하나만 제대로 걸리면 끝나듯이 케언스에는 무시무시한 한방이 있다. 바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다. 세계 최대 자연유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산호초는 무려 2000㎢에 달한다. 굳이 달에서도 보인다는 전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다이버들에게는 죽기 전 꼭 한 번 바닷속에 몸을 담가봐야 하는 꿈의 장소다. 그렇다고 해수욕하듯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케언스의 해변은 대부분 뻘이라 산호초를 보려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패키지 여행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즐기는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이다. 그저 수영복을 걸치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셔틀버스로 선착장까지 데려다준다. 배 앞에는 승무원들이 케언스의 햇살 같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기다리고 있다. 배를 타고 두 시간을 가면 산호초 사이 목 좋은 곳에 떠 있는 커다란 갑판에 도착한다. 출발 전 미리 예약하면 헬기를 타고 푸른 산호초를 내려다보거나 스쿠버 다이빙이나 시 워킹으로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스노클링과 음식점에서 겪은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밥장 작가의 일러스트.
스노클링과 음식점에서 겪은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밥장 작가의 일러스트.
스노클링은 화장실 욕조에 뛰어들 듯 아무때나 즐길 수 있다. 식사도 걱정할 것 없다. 아까 그 멋진 승무원들이 점심 때에 맞춰 뷔페를 근사하게 차려놓는다. 마주 앉은 중국인 관광객의 접시에는 새우 껍데기가 이미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스쿠버 다이빙은 자격증이 없어도 즐길 수 있다. 전문 스쿠버가 알려주는 몇 가지 안전수칙만 잘 따르면 된다. 잠수복을 입으면 공기통과 장비는 다 알아서 챙겨준다. 바닷속에서는 코를 잡고 귀에 바람을 넣어주는 이퀄라이징으로 압력을 맞춰줘야 한다. 그것 빼고는 숨만 쉬면 된다. 전문 스쿠버가 팔짱을 낀 채 알아서 멋진 산호초 사이를 사뿐히 데려다준다. 다이빙을 마칠 때면 대가리 앞쪽이 불룩 튀어나온 커다란 나폴레옹 피시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기념사진을 찍어 팔기 위해 미리 길들인 애완 물고기인 셈이다. 다른 물고기는 몰라도 이 녀석은 살살 만져도 괜찮다.


포트 더글러스의 매혹적인 자연

포트 더글러스는 케언스에서 북쪽으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부호들의 휴식처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는 길부터 ‘때깔’이 다르다. 파란 하늘 아래 열대 나무들과 바다가 차례로 스쳐간다. 함께 간 사진작가는 강원도 인제랑 비슷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이런 고급스러운 창밖 풍경을 만끽하려면 창틀도 따라줘야 한다. 흔하디 흔한 승합차보다는 폭스바겐 콤비가 더 어울릴 법해서 따로 렌트를 했다. 어째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지만 케언스에서는 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앞유리를 걸쇠를 밀어 살짝 연 다음 목받이 없는 운전석에 앉는다. 운전대는 지나치게 크고 계기판은 단순하다. 부지런히 기어를 바꾸며 시속 60㎞로 달린다.

포트 더글러스에서 집라인을 타는 여행객들.
포트 더글러스에서 집라인을 타는 여행객들.
나도 모르게 조지 해리슨이 부른 ‘Here Comes The Sun’이 입속에서 맴돈다. 오후에 집라인을 타고 포트 더글러스 중심가인 매크로슨 거리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저문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비치 체어에 나란히 앉아 호수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거린다. 머리 위 나무에서는 보이지 않는 새들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재잘거린다. 펍과 레스토랑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커다란 화면에 똑같은 럭비 경기를 보여준다. 빈 맥주잔이 늘어날수록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어디선가 팟타이가 듬뿍 들어간 음식 냄새가 풍겨온다. 마치 ‘몰랐어? 포트 더글러스는 늘 이렇게 저녁을 맞이해’라며 속삭이는 듯하다.


열기구는 꿈처럼 날아오른다
케언스 서쪽 평야지대 마리바에서 탈 수 있는 열기구.
케언스 서쪽 평야지대 마리바에서 탈 수 있는 열기구.
열기구를 타려면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달리면 케언스 서쪽 평야지대인 마리바에 도착한다. 바구니 위에 달린 버너는 쉭쉭거리며 사람 키만한 불꽃을 일으키며 어둠을 밝힌다.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기구를 부풀려 천천히 모습을 갖춘다. 주름진 얼굴에 야구모자를 깊이 눌러쓴 조종사가 버너 밑에 자리 잡고 양 옆으로 8명씩 신중하게 무게를 맞춰 타면 출발 준비가 끝난다.

열기구는 정수리가 뜨거울 만큼 큰 불꽃을 일으키기 때문에 라이터나 담배 같은 인화성 물질은 절대 가지고 탈 수 없다. 이제 뜨는가 싶더니 어느덧 무서울 만큼 두둥실 떠오른다. 이제 그만 됐다고 소리지르고 싶은데 조종사는 오히려 밸브를 열어 불꽃을 더 세게 올린다. 풍경은 마치 구글 위성사진처럼 보이고 하늘은 스피커 없는 모니터 화면처럼 조용하다. 이쯤 되니 두려움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발 아래 숲속에서는 놀란 왈라비들이 깡총거리고 먼 하늘에서는 천천히 해가 떠오른다. 어느덧 내릴 시간이다. 승객들은 조종사의 지시에 맞춰 모두 바구니에 등을 바짝 붙이고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 앞에 있는 줄을 단단히 붙잡는다. 조종사가 버너와 줄을 번갈아 잡아당기면 바구니는 두둑거리며 풀밭을 쓸며 착륙한다. 바구니에 짓눌린 풀들이 시원하고 향긋한 향기를 낸다. 착륙을 마치면 승객들이 직접 열기구를 정리한다. 스태프들과 함께 일렬로 서서 열기구에 들어 있는 더운 바람을 빼낸 뒤 착착 접어서 트럭에 싣는다.

스카이레일, 생태관광의 지평을 열다

호주에서 숲 안내를 하는 가이드 롭.
호주에서 숲 안내를 하는 가이드 롭.
케언스 북서쪽 쿠란다 마을은 자연에 끌린 예술가와 히피들이 모여 생겼다. 열대우림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인 스카이레일은 이 마을에서 출발한다. 챙이 넓은 모자에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안내자인 롭과 함께 케이블카에 오른다. 오른쪽 소매에 붙은 안내자 견장에는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파란색 얼굴에 큰 눈, 위협적인 주둥이에 붉은 갈기, 그것도 모자라 포마드로 넘긴 상남자 머리 같은 혹이 솟아나 있다. 이 숲속에 사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새인 캐서워리다. 화식조과의 희귀종으로 타조와 에뮤 다음으로 크다. 크기도 크기지만 성질 나면 사람한테도 체중을 한껏 실어 양발 킥을 날린다.

일러스트로 표현한 숲 안내자 롭과 캐서워리.
일러스트로 표현한 숲 안내자 롭과 캐서워리.
롭에게 왜 스카이레일이 세계 최초의 생태관광인지 물어봤다. 공사하는 데는 1년 반이 걸렸지만 사전조사를 마치고 주민 동의를 얻어 허가받는 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숲을 해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육로 대신 헬기로 모든 자재를 옮겼고 공사 인부들이 들어갈 때는 다른 작물의 씨나 버섯균이 들어오지 않게끔 철저히 방역했다고 한다. 건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으로 보면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의 시작이었다. 울타리가 없어서 숲으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일부러 길을 만들지 않아 관광객은 모두 스카이레일을 이용한다. 숲을 관리하기 위해 안내자들만 정기적으로 드나든다고 한다.

호주에서 인기 있는 코알라.
호주에서 인기 있는 코알라.
그 외에 초급자도 쉽게 즐기는 배런강 래프팅, 열대우림 사이를 가로지르는 집라인과 축축한 숲과 강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수륙양용차 투어까지 조금도 쉴 틈 없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어땠냐고?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사실 마냥 자유롭게 다니는 게 좋긴 하다. 하지만 때로는 나 대신 앞장 서서 알아서 끌고 다니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빡빡하게 조여주는 것 또한 좋다.

케언스=글·그림 밥장 여행작가(일러스트레이터) jbob70@naver.com

여행메모

대한항공 직항 편을 이용하면 약 10시간 만에 브리즈번에 도착한다. 캐세이패시픽항공으로 홍콩을 경유하거나 유나이티드항공으로 괌을 경유해 케언스로 들어설 수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콴타스항공의 시드니·브리즈번행 노선을 이용한 다음 시드니공항 또는 브리즈번공항에서 호주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이용해도 좋다.

호주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3개월 이내의 관광 목적으로 입국할 때는 ETA 전자비자가 필요하다. 호주는 동부·중부·서부의 세 가지 시간대로 나뉜다. 인접한 시간대에는 30분씩 시간이 늦어진다. 케언스가 있는 퀸즐랜드주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빠르다. 케언스는 17~31도로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만큼 따뜻해 낮에는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다녀도 충분하다. 오전과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 쌀쌀하므로 겉옷은 준비하는 게 좋다. 보통 11~4월은 우기, 5~10월은 건기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