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우리는 정권의 용병…'어공' 눈치보느라 소화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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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공'과 '늘공'
청와대 파견 공무원(늘공)의 고백
'어공'과 '늘공'의 충돌
정책 불협화음 잇따를 때마다 "영혼없이 일해 정권 망치느냐"
아래 직급 '어공'에 핀잔 들어
몸 고생…마음 고생…
새벽 출근에 심야근무 다반사…힘들다고 하소연도 못해
복귀 때 승진하는 것도 옛말
청와대 파견 공무원(늘공)의 고백
'어공'과 '늘공'의 충돌
정책 불협화음 잇따를 때마다 "영혼없이 일해 정권 망치느냐"
아래 직급 '어공'에 핀잔 들어
몸 고생…마음 고생…
새벽 출근에 심야근무 다반사…힘들다고 하소연도 못해
복귀 때 승진하는 것도 옛말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8월 청와대 A비서관이 B수석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A비서관은 B수석을 노려보며 “그런 식으로 브리핑을 하면 어떡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B수석이 춘추관에서 브리핑한 것이 언론에 비판적으로 보도된 뒤였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차관급이며, 비서관은 그 아래인 1급이다. A비서관은 정치권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약칭)’이고, B수석은 관료 출신인 ‘늘공(늘 공무원의 약칭)’이었다.
이 일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선 “어공과 늘공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직급상 한 단계 아래인 1급 공무원이 차관급 공무원에게, 더구나 다른 수석실 상관에게 호통을 친 것은 공직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늘공 수석 위에 어공 비서관
청와대 늘공과 어공은 항상 긴장 관계다. 주로 집권 여당에서 파견 나온 어공은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 핵심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대부분이다. 어공의 역할은 늘공이 마련한 정책에 정무적 색깔을 입히는 것이다. 동시에 늘공의 감시자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정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어공들은 “늘공은 영혼 없이 일한다”고 비판하고, 반대로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행정 전문가들인 늘공은 “어공이 일하는 방식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긴장관계가 때로는 불협화음을 만들기도 했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이른바 ‘핵심 어공 그룹’의 장악력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청와대 내부에서는 “어공들이 푸대접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2013년 여름 세법개정안 파동과 이듬해 연말정산 폭탄 논란 등을 겪으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정무적 판단을 보강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어공이 전면에 등장했다. 박 대통령도 일이 터지면 이정현 전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대표), 안종범 전 경제수석(현 정책조정수석) 같은 어공 수석을 찾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 어공은 ‘우리가 만든 정권을 늘공이 망치고 있다’는 노골적인 비난을 공공연하게 한다”며 “결국 늘공은 ‘정권의 용병’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청와대 파견=승진’은 옛날 이야기
한때 관가에서 통용되던 ‘청와대 파견=승진’이라는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청와대 파견은 공무원에게 ‘출세 코스’로 여겨졌다. 부처 내 ‘에이스’만 청와대로 파견됐고, 복귀할 땐 한 단계 승진이 보장됐다. 국·과장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된 공무원이 다음 정권 때 비서관으로 다시 파견됐다가 차관급으로 승진해 돌아가는 게 일반적인 승진 코스였다.
하지만 청와대 파견을 승진 기회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박 대통령의 지침이 내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혜택은커녕 청와대에 파견갔다가 승진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부처 출신 C비서관은 청와대로 파견 나갔다가 행정고시 동기들보다 오히려 늦게 차관으로 승진했다. 어공 수석이 “청와대 근무 이후 다음 자리를 염두에 두고 일하면 안 된다”고 하는 통에 C비서관은 “부처로 돌아가겠다”는 말도 못 꺼냈다고 한다.
한 늘공 행정관은 “청와대 파견을 꺼리다 보니 복귀하고 싶어도 대타가 없어 파견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특히 ‘순장조(정권 말기까지 청와대에 근무하는 것을 일컫는 표현)’로 남을 경우 다음 정부에서 낙인이 찍힐 수 있어 말년이 되기 전에 서로 먼저 탈출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허리디스크는 기본…치아 내려앉기도
청와대 업무 강도는 만만치 않다.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등 주요 회의는 매일 오전 8시30분에 열린다. 각 수석실 비서관과 행정관은 새벽부터 나와 회의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한 수석실이 5개 이상 부처의 업무를 총괄하다 보니 담당 부처와 조율하기에도 24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퇴근을 정시에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중요한 현안이 발생하면 주무 수석실이 아니더라도 야근과 비상대기, 주말근무는 기본이다.
자리에 앉아서 일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허리디스크는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에게 ‘필수 질병’처럼 됐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은 허리디스크가 심해 한동안 보조의자에 누워서 업무를 볼 정도였다. 치아가 내려앉아 치료를 받는 직원도 꽤 있다. 그런데도 “힘들다”는 하소연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한 직원은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감사히 여기라고 말하는데, 누가 감히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이 일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선 “어공과 늘공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직급상 한 단계 아래인 1급 공무원이 차관급 공무원에게, 더구나 다른 수석실 상관에게 호통을 친 것은 공직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늘공 수석 위에 어공 비서관
청와대 늘공과 어공은 항상 긴장 관계다. 주로 집권 여당에서 파견 나온 어공은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 핵심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대부분이다. 어공의 역할은 늘공이 마련한 정책에 정무적 색깔을 입히는 것이다. 동시에 늘공의 감시자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정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어공들은 “늘공은 영혼 없이 일한다”고 비판하고, 반대로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행정 전문가들인 늘공은 “어공이 일하는 방식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긴장관계가 때로는 불협화음을 만들기도 했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이른바 ‘핵심 어공 그룹’의 장악력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청와대 내부에서는 “어공들이 푸대접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2013년 여름 세법개정안 파동과 이듬해 연말정산 폭탄 논란 등을 겪으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정무적 판단을 보강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어공이 전면에 등장했다. 박 대통령도 일이 터지면 이정현 전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대표), 안종범 전 경제수석(현 정책조정수석) 같은 어공 수석을 찾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 어공은 ‘우리가 만든 정권을 늘공이 망치고 있다’는 노골적인 비난을 공공연하게 한다”며 “결국 늘공은 ‘정권의 용병’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청와대 파견=승진’은 옛날 이야기
한때 관가에서 통용되던 ‘청와대 파견=승진’이라는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청와대 파견은 공무원에게 ‘출세 코스’로 여겨졌다. 부처 내 ‘에이스’만 청와대로 파견됐고, 복귀할 땐 한 단계 승진이 보장됐다. 국·과장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된 공무원이 다음 정권 때 비서관으로 다시 파견됐다가 차관급으로 승진해 돌아가는 게 일반적인 승진 코스였다.
하지만 청와대 파견을 승진 기회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박 대통령의 지침이 내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혜택은커녕 청와대에 파견갔다가 승진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부처 출신 C비서관은 청와대로 파견 나갔다가 행정고시 동기들보다 오히려 늦게 차관으로 승진했다. 어공 수석이 “청와대 근무 이후 다음 자리를 염두에 두고 일하면 안 된다”고 하는 통에 C비서관은 “부처로 돌아가겠다”는 말도 못 꺼냈다고 한다.
한 늘공 행정관은 “청와대 파견을 꺼리다 보니 복귀하고 싶어도 대타가 없어 파견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특히 ‘순장조(정권 말기까지 청와대에 근무하는 것을 일컫는 표현)’로 남을 경우 다음 정부에서 낙인이 찍힐 수 있어 말년이 되기 전에 서로 먼저 탈출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허리디스크는 기본…치아 내려앉기도
청와대 업무 강도는 만만치 않다.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등 주요 회의는 매일 오전 8시30분에 열린다. 각 수석실 비서관과 행정관은 새벽부터 나와 회의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한 수석실이 5개 이상 부처의 업무를 총괄하다 보니 담당 부처와 조율하기에도 24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퇴근을 정시에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중요한 현안이 발생하면 주무 수석실이 아니더라도 야근과 비상대기, 주말근무는 기본이다.
자리에 앉아서 일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허리디스크는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에게 ‘필수 질병’처럼 됐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은 허리디스크가 심해 한동안 보조의자에 누워서 업무를 볼 정도였다. 치아가 내려앉아 치료를 받는 직원도 꽤 있다. 그런데도 “힘들다”는 하소연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한 직원은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감사히 여기라고 말하는데, 누가 감히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