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겸 엔브이에이치코리아 회장(가운데)이 28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중앙연구소에서 흡음재인 입체섬유 대쉬 아이소패드를 임직원과 함께 점검하고 있다. 엔브이에이치코리아 제공
구자겸 엔브이에이치코리아 회장(가운데)이 28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중앙연구소에서 흡음재인 입체섬유 대쉬 아이소패드를 임직원과 함께 점검하고 있다. 엔브이에이치코리아 제공
현대자동차는 별도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차 EQ900을 개발하면서 ‘세계 명차(名車)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주요 부품은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최고 제품을 쓴다는 방침이었다.

현대차가 동력 성능이나 승차감만큼 중요한 명차의 조건인 정숙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파트너는 한국 부품회사인 엔브이에이치코리아였다. 엔지니어(미국 아이오와대 기계공학 박사) 출신인 구자겸 회장이 운영하는 엔브이에이치코리아는 국내 직원 400여명 중 100여명이 연구개발(R&D) 인력일 정도로 기술력에 ‘올인’하는 회사다.

◆대기업 수준 연구소 설비

EQ900의 정숙성, 이곳에서 탄생
지난 28일 찾은 경기 화성시의 엔브이에이치코리아 중앙연구소에는 완성차업체 연구소에서나 볼 수 있는 ‘무향실’과 ‘잔향실’이 있었다. 무향실은 지하 2층~지상 3층 규모의 공간을 완벽한 무소음 상태로 만든 실험실이다. 외부 요인 없이 차량에서 나는 소음만 측정하기 위한 장비다.

무향실에 설치된 다이나모(자동차용 러닝머신)에 수십개의 마이크를 설치한 자동차를 작동했다. 무향실 밖 컴퓨터에 차량 어느 부분에서 어떤 소음이 발생하는지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축적됐다. 구 회장은 “축적한 데이터는 어느 부위에 어떤 흡·차음재를 넣을지 결정하는 중요한 연구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잔향실은 무향실과 반대로 실험실 내 소리를 최대한 오래 울리도록 하는 설비다. 잔향실에 흡·차음재를 넣고 소리를 울리면 흡·차음재가 얼마나 소음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지 측정할 수 있다.

EQ900의 정숙성, 이곳에서 탄생
무향실과 잔향실은 하나 설치하는 데 들어가는 투자비용만 30억~40억원에 달한다. 대부분 기업은 대기업이나 국책연구소의 무향실을 빌려 쓴다.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무향실·잔향실을 갖춘 회사는 이 분야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엔브이에이치코리아와 2위 대한솔루션밖에 없다.

엔브이에이치코리아는 2000년 100억원가량을 투자해 중앙연구소를 지을 때 무향실과 잔향실을 설치했다. 구 회장은 “주 고객사인 현대·기아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소음과 진동 부문에서도 동반자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과감하게 투자했다”고 말했다.

중앙연구소를 지은 2000년 엔브이에이치코리아의 매출은 263억원이었다. 이후 현대·기아차의 성장과 함께 이 회사의 매출은 매년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지난해에는 매출 5325억원, 영업이익 153억원을 올렸다.

◆상생협력 모범 사례로 꼽혀

엔브이에이치코리아는 올 상반기 매출 2760억원, 영업이익 122억원을 올렸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8.4%와 388.0% 증가한 규모다.

실적 개선의 1등공신은 제네시스 EQ900과 G80 등에 들어가는 최고급 흡·차음재다. 엔브이에이치코리아는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와 함께 제네시스에 들어가는 ‘입체섬유 대쉬 아이소패드’라는 신제품을 개발했다.

대쉬 아이소패드는 엔진룸과 승차공간 사이에서 소음을 흡수·차단하는 직사각형 판자 모양 부품이다. 현대·기아차와 엔브이에이치코리아는 정숙성과 연비를 한꺼번에 끌어올리기 위해 흡·차음 성능은 높이면서 무게는 줄이는 신소재 개발에 2012년 착수했다.

현대·기아차는 섬유 단면이 잎사귀 8장이 붙은 나뭇가지 형태인 ‘8엽형 입체섬유’ 특허를 공유하고 시작금형 제작, 부품성능 검증 비용을 댔다. 엔브이에이치코리아는 현대·기아차에서 받은 입체섬유를 활용한 부직포 제조 공법과 부품 성형 공법 등을 개발했다. 3년에 걸친 공동 연구의 결과물인 입체섬유 대쉬 아이소패드는 기존 제품 대비 흡음률이 24% 높고 무게는 20%가량 적게 나간다.

두 회사의 협업 사례는 공정거래위원회 ‘2016년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서 10대 모범사례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김재신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지원해 함께 기술을 개발하면 해당 대기업은 물론 한국 산업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며 “현대차와 엔브이에이치코리아의 협력과 같은 사례가 앞으로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