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정부발 구조조정] '업계 자율' 명분 내세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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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컨설팅사 뒤에 숨은 정부
보고서 빌려 재편 주문
"차라리 앞에 나서 지휘를"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
컨설팅사 뒤에 숨은 정부
보고서 빌려 재편 주문
"차라리 앞에 나서 지휘를"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8일 허수영 석유화학협회장(롯데케미칼 대표) 등 유화업계 최고경영자(CEO) 10명을 만나 “공급과잉 품목을 중심으로 즉각적인 사업재편에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산업부는 주 장관의 발언이 베인앤컴퍼니가 이날 내놓은 ‘석유화학 컨설팅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하는 업종은 석유화학을 비롯해 철강, 조선 등이다. 산업부는 이들 업종을 어떻게 구조조정할지를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맡겨놓은 상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석유화학협회 철강협회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컨설팅사에 용역을 발주하는 형식을 취했다. 산업부가 직접 나섰다가 “정부가 민간 구조조정을 지휘했다”는 소리를 듣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이번 구조조정은 업계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부가 최대한 책임 지지 않기 위해 협회에 보고서 발주를 맡긴 것 아니냐. 컨설팅사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계속 내용을 공유하는 것 같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전면에 나서기 부담스러워 하는 산업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주요 산업의 사업재편 방향을 외국계 컨설팅사가 3~4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철강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의뢰해 작성한 중간보고서 내용이 이달 초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을 때 업계에서는 “업계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보고서 같다”는 반응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후판 생산량이 과잉이니 공장의 절반을 없애라는 식이었다”며 “중국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한 공급과잉은 해소되지 않는데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민간 자율에 맡긴다고 해놓고 컨설팅사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구조조정을 서두르라”고 주문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결국 정부가 컨설팅사 뒤에 숨어서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것 아닌가. 이럴 거면 정부가 당당하게 앞에 나서는 게 낫다. 그래야 업계에 강한 시그널을 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3개 업종 중 고용 연관성이 가장 큰 조선업에 대한 평가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도 말이 많다. 일각에서는 “가장 시급한 게 조선 구조조정인데 책임질 일이 많고 업계와 정치권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최대한 뒤로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하는 업종은 석유화학을 비롯해 철강, 조선 등이다. 산업부는 이들 업종을 어떻게 구조조정할지를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맡겨놓은 상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석유화학협회 철강협회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컨설팅사에 용역을 발주하는 형식을 취했다. 산업부가 직접 나섰다가 “정부가 민간 구조조정을 지휘했다”는 소리를 듣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이번 구조조정은 업계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부가 최대한 책임 지지 않기 위해 협회에 보고서 발주를 맡긴 것 아니냐. 컨설팅사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계속 내용을 공유하는 것 같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전면에 나서기 부담스러워 하는 산업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주요 산업의 사업재편 방향을 외국계 컨설팅사가 3~4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철강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의뢰해 작성한 중간보고서 내용이 이달 초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을 때 업계에서는 “업계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보고서 같다”는 반응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후판 생산량이 과잉이니 공장의 절반을 없애라는 식이었다”며 “중국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한 공급과잉은 해소되지 않는데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민간 자율에 맡긴다고 해놓고 컨설팅사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구조조정을 서두르라”고 주문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결국 정부가 컨설팅사 뒤에 숨어서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것 아닌가. 이럴 거면 정부가 당당하게 앞에 나서는 게 낫다. 그래야 업계에 강한 시그널을 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3개 업종 중 고용 연관성이 가장 큰 조선업에 대한 평가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도 말이 많다. 일각에서는 “가장 시급한 게 조선 구조조정인데 책임질 일이 많고 업계와 정치권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최대한 뒤로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