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대한민국 검찰] "일부 미꾸라지가 물 흐려…야근 하면서도 힘 빠진다"
“이달 들어 새벽 1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어요. 보강 수사에 수사 지휘, 기획 수사까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부 A검사는 “몸이 힘든 건 괜찮지만 일부 검사의 일탈로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검사가 매도되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선 검사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연이어 터진 ‘검사 비리’로 검사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악화된 데 따른 후유증이다. ‘스폰서 검사’ 의혹을 받는 김형준 부장검사가 29일 구속되면서 검사들은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고 토로한다. 8년 차인 한 검사는 “대다수 검사는 쌓여 있는 수사 기록과 씨름하느라 새벽까지 검사실 불을 밝히며 일한다”며 “일부 미꾸라지가 전체 물을 흐리니 야근을 하면서도 힘이 쭉 빠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검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임용 직후 형사부에 배정된다. 형사부 검사들은 오전 8시쯤 출근해 하루를 시작한다. 맨 먼저 당일 처리해야 할 사건 목록을 작성한다. 이어 경찰에서 올라온 기록을 확인하고 경찰 수사를 지휘한다. 보강 수사가 필요하면 직접 수사하기도 한다. 업무 중 상당 부분은 피의자를 조사하고 조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낮 시간에 조서를 작성하면 저녁에는 공소장을 만든다. 기소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불기소 사건 중 무고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면 무고죄 성립 여부도 확인한다.

수사할 테마를 정하는 등 ‘기획’도 같이해야 한다. 13년 차인 B검사는 “주어진 사건만 수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기획 수사를 얼마나 잘 처리했느냐에 따라 인사평가가 달라진다”며 “대다수 검사는 업무에 치여 브로커를 만나는 등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특수부나 공안부에 소속된 검사들도 고달프다. 한 특수부 검사는 “사건이 빠르게 돌아가면 며칠 밤을 새우는 건 예삿일”이라며 “주말과 연휴에도 쉴 수 없는 건 물론이고 휴가의 ‘휴’도 얘기를 못 꺼낸다”고 고개를 저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지난 추석 연휴에도 하루나 이틀을 제외하고 야간 근무까지 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하는 한 경비원은 “야간 근무를 하다 보면 새벽 3시가 넘어서 검사들이 어깨가 축 처진 채 퇴근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며 “밖에서는 ‘검사님’ 소리를 듣겠지만 안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라고 했다. 한국 검찰이 한 해 처리하는 기소 사건은 70만건, 불기소 사건은 95만건이다. 검사(총 2058명) 한 명이 연간 약 800건의 사건을 맡는 셈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