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삼십육점오 도'의 실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님’은 계장님이나 면장님에게만 붙는 말이 아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에게도 붙고 임금님과 하느님에도 붙는, 가장 높은 존경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이 나라 대통령‘님’에도 그 딱딱한 ‘각하’ 대신에 쓰였으면 좋겠다.”
1978년 한창기 선생은 자신이 발행하는 뿌리깊은나무에서 ‘각하’란 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슬 퍼런 유신 치하 시절이었다. 자유당 시절 낚시를 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수행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고 했다는 그 ‘각하’다. 이후 ‘각하’는 많은 수난을 겪었다. 왕조 시대 용어인 이 말은 5공 때까지만 해도 권위주의를 대표했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구호로 내세운 노태우 정부를 거치면서 점차 사라지더니 김대중 정부 들어 사실상 없어졌다. 대신 ‘대통령님’이 그 자리를 메웠다. 시대를 앞서 우리말 속 권위주의를 질타한 선생은 선각자였다. 요즘 보도자료엔 ‘VIP’란 정체불명의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는 ‘가카’니 ‘까까’니 해서 놀림감이 되기도 했으니 격세지감이다.
선생의 삶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법대를 나온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백과사전 외판원이었다. 나중에 한국브리태니커회사를 차려 한국에서 ‘직판 마케팅’ 시대를 열며 소위 ‘떼돈’을 벌었다. 그곳에서 세일즈를 배운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윤석금은 독도에서도 판다’는 신화가 그때 생겼다)을 비롯해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박원순 서울시장, 소설가 안정효 씨 등이 편집위원 등으로 그와 인연을 맺었다.
선생은 국어학자 뺨칠 정도로 우리말에 밝았고 문법도 철저히 따졌다. 그가 발행한 월간지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에는 우리말 사랑이 오롯이 담겼다. 한글 이외에는 어떤 문자도 용납하지 않았다. 온도 36.5도를 쓸라치면 ‘삼십육점오 도’로 적는 식이었다. ‘필요로 한다’ 등 우리말의 어법을 갉아먹는 번역말투는 일절 배제했다(손세일 전 국회의원, 특집! 한창기). 편집방침을 따르지 않는 외부 필자의 글은 아예 받지 않았다. 그런 과격한 시도는 독자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했지만, 이후 우리말 발전에 큰 불쏘시개가 됐다.
다음달이 그의 탄생 80주년(음력 9월28일)이다. 1936년 태어나 1997년 2월3일 61세로 짧은 생을 마쳤다. 그가 혼을 불태우던 잡지는 사라졌지만 그가 보여준 우리말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1978년 한창기 선생은 자신이 발행하는 뿌리깊은나무에서 ‘각하’란 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슬 퍼런 유신 치하 시절이었다. 자유당 시절 낚시를 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수행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고 했다는 그 ‘각하’다. 이후 ‘각하’는 많은 수난을 겪었다. 왕조 시대 용어인 이 말은 5공 때까지만 해도 권위주의를 대표했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구호로 내세운 노태우 정부를 거치면서 점차 사라지더니 김대중 정부 들어 사실상 없어졌다. 대신 ‘대통령님’이 그 자리를 메웠다. 시대를 앞서 우리말 속 권위주의를 질타한 선생은 선각자였다. 요즘 보도자료엔 ‘VIP’란 정체불명의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는 ‘가카’니 ‘까까’니 해서 놀림감이 되기도 했으니 격세지감이다.
선생의 삶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법대를 나온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백과사전 외판원이었다. 나중에 한국브리태니커회사를 차려 한국에서 ‘직판 마케팅’ 시대를 열며 소위 ‘떼돈’을 벌었다. 그곳에서 세일즈를 배운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윤석금은 독도에서도 판다’는 신화가 그때 생겼다)을 비롯해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박원순 서울시장, 소설가 안정효 씨 등이 편집위원 등으로 그와 인연을 맺었다.
선생은 국어학자 뺨칠 정도로 우리말에 밝았고 문법도 철저히 따졌다. 그가 발행한 월간지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에는 우리말 사랑이 오롯이 담겼다. 한글 이외에는 어떤 문자도 용납하지 않았다. 온도 36.5도를 쓸라치면 ‘삼십육점오 도’로 적는 식이었다. ‘필요로 한다’ 등 우리말의 어법을 갉아먹는 번역말투는 일절 배제했다(손세일 전 국회의원, 특집! 한창기). 편집방침을 따르지 않는 외부 필자의 글은 아예 받지 않았다. 그런 과격한 시도는 독자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했지만, 이후 우리말 발전에 큰 불쏘시개가 됐다.
다음달이 그의 탄생 80주년(음력 9월28일)이다. 1936년 태어나 1997년 2월3일 61세로 짧은 생을 마쳤다. 그가 혼을 불태우던 잡지는 사라졌지만 그가 보여준 우리말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