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의 시사토크] 로비,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야
자리마다 김영란법이 화제다. 일반 주부들도 부정청탁이나 ‘3·5·10만원 룰’을 거론하는 정도다. 전 국민이 자신도 대상이라는 걸 깨달아 가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다들 몸조심한다며 약속을 일단 취소하고, 만나는 대신 전화하면서 차츰 접촉이 끊겨 가는 중이다. 특히 공직자는 심각하다. 세종시에선 공직자들이 부정청탁 시비에 휘말릴까 봐 민원인과의 접촉을 일단 피하고 본다고 한다. 일선 창구일수록 소위 ‘란파라치’도 염려될 것이다. 그러나 사업 하나 하려면 부처들의 도장 수백 개를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정부는 계속 커지는 중이다. 공직자를 만나기조차 힘들면 느린 사회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접촉이 끊기는 '느린 사회'

공직자와 접촉할 기회는 소수에 더욱 편중될 가능성이 크다. 안면이 있는 전관 등 지인이나 김영란법에서 지역 민원 전달을 허용한 국회의원, 준공직자에서 빠진 변호사, 시민단체 등에 기회가 몰릴 것이다. 그렇지만 늘 은밀한 로비는 이런 틈을 비집고 끼어든다. 이렇게 되면 정책은 편향적이고 왜곡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지 않아도 공직자들은 세종시로 이전한 후 정책 품질이 떨어졌다고 하소연한다. 한국경제신문 조사에 따르면 과장급 이상 공무원 중 ‘정책 품질이 많이 나빠졌다’는 응답이 12.5%, ‘다소 나빠졌다’는 응답이 41.7%였다. 현실과 괴리돼 정보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로비를 법제화해 양지로 나오게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로비의 법제화는 로비를 공개화·투명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로비의 허용범위, 로비스트의 등록과 로비 활동의 공개 의무화, 성공사례금 금지 등 엄격한 요건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순기능은 많다. 무엇보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많은 전문 정보가 제공돼 정책 품질을 높일 수 있다. 로비 활동 내역이 공개되는 만큼 정책 결정 과정에 누가 어떻게 영향력을 미쳤는지도 드러날 것이다.

로비의 법제화 공론화를

그동안 법제화 시도가 없지 않았다. 17대 국회에선 3개 의원입법안이 나왔고 김영란법을 만든 국민권익위원회 전신인 국가청렴위도 2007년 법제화를 추진했다. 법무부는 2014년에 용역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 논의가 중단돼 버린 데에는 로비와 로비스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물론 비판도 있다. 로비가 양성화되면 불법 로비와 뇌물 등 불법 행위가 더 판치고, 힘 세고 돈 많은 사람들만 덕을 볼 것이란 소리도 나온다. 지연·혈연·학연에 묶인 우리 정치·사회 풍토에선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정권마다 마당발,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무슨 무슨 게이트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불법 로비가 엄연히 존재한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불법 로비를 묵인하자는 주장과 다를 게 없다.

로비를 양지로 끌어내 로비의 합법과 불법을 분명히 가르고, 허용되는 로비의 상한을 정할 필요가 있다. 합법적 로비를 통해 정책에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변호사를 고용해 판사의 판결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합법적 로비스트는 브로커나 전관 등이 암약할 여지를 줄인다. 무엇보다 접촉 단절이 우려될수록 정책 입안자에게 많은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국회가 만드는 법안의 독소조항을 사전에 걸러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느린 사회가 될 수는 없지 않나.

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