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가마의 아크로폴리스
베르가마의 아크로폴리스
터키는 동서양의 역사와 문명이 압축된 인류의 보고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부터 세계 최초로 철기시대를 연 히타이트와 알파벳을 만든 페니키아, 로마,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풍미했던 제국이 번갈아 지배했다. 그 흔적이 터키 서남부 아나톨리아 반도 곳곳에 남아 있다. 터키에는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고적이 즐비하다. 인류 역사의 보고인 색다른 터키를 만나고 싶다면 터키 역사 기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7000년 전 문명 유적지 차탈회위크

터키 중부 내륙 도시 콘야(Konya)에서 남쪽으로 40㎞가량 떨어져 있는 차탈회위크 유적지는 약 7000년 전인 신석기 후기부터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유적지다.

고대 인류의 생활상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다면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약 6000년 전 5000~1만명 규모의 인구를 자랑한 거대 도시인 차탈회위크는 흑요석의 주요 생산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해 각종 교역이 활발히 일어난 무역 도시였다. 현재는 황량한 유적지의 흙벽돌 가옥과 벽화, 신전의 흔적을 통해 모신상(母神像)과 모신에게 바친 제물의 모습 등 과거의 문명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페르가몬의 번성 증명할 베르가마

에게해 최대 연안 도시이자 터키 제3의 도시 이즈미르에서 북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고원 지대에 있는 고대도시 베르가마는 페르가몬 왕국의 찬란한 역사를 품고 있는 헬레니즘 시대 중심 도시다. 페르가몬 시대 종교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꽃을 피운 베르가마는 터키에서 페르가몬 시대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헬레니즘을 비롯한 터키 고대 건축 탐방 여행지로 부족함이 없다.

세계 최고의 경사를 자랑하는 아크로폴리스 야외극장, 아시아 최초의 도서관인 페르가몬 도서관,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건립돼 로마 시대까지 번성한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 아스클레피온, 요한계시록에서 기록한 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인 베르가모 교회 등 헬레니즘 유적지로 도시가 빼곡하다.

셀축 에페수스, 금과 은의 중심 교역지
에페수스에 있는 켈수스 도서관
에페수스에 있는 켈수스 도서관
에페수스는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80㎞가량 떨어진 셀축에 있는 고대 도시로, 고대 그리스의 아네테가 기원전 7세기에 건립한 것이 기원이 된 도시다.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 등의 지배를 받은 식민 역사가 에페수스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다양한 건축과 문화를 남겼다. 지리적 이점으로 금과 은의 중심 교역지로 활발했던 이곳은 막대한 부를 축척한 덕택에 화려하고 웅장한 고대 건축물이 많다.

2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에페수스 대극장
2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에페수스 대극장
대부분 건축물이 잦은 침략으로 파괴됐지만 여전히 거대한 위용을 뽐내고 있어 화려했던 고대 에페수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에페수스는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다. 에페수스 외곽 7㎞ 거리에 있는 불불산에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생을 마감한 ‘성모 마리아의 집’이 있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의 집은 긴 세월 동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덕분에 종교적인 배경과 더불어 신비롭게 느껴진다.

황량한 고원에 남은 문명 흔적 아니 고고유적지

아니(Ani) 고고유적지는 터키 북동부의 폰투스 산맥 고원의 아르메니아 접경지역에 있는 고대 유적지다. 수세기에 걸쳐 기독교와 무슬림 왕조에 의해 구축된 아니는 중세 아르메니안 왕국의 수도이자 실크로드 주요 도시로 10~12세기에 인구가 10만명에 육박한 대도시였다. 비잔틴, 셀주크튀르크, 조지아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이 바뀌는 와중에도 캐러밴 상단의 중요한 교차로 역할을 하며 번영을 누렸으나 몽골의 침략과 1319년 지진으로 인해 쇠락했다. 아니 고고유적지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유적으로 11세기 건축된 고딕 양식의 아니 대성당, 우아한 아치 형태로 르네상스 양식을 떠올리는 13세기 건축물 성 그레고리 교회, 11세기 건축된 마누치얼 이슬람 사원, 아니 고고유적지를 감싼 성벽 등이 주요 유적지다.

시난의 걸작 셀리미예 모스크

터키 북서쪽 그리스 접경 도시인 에디르네 중심에 있는 셀리미예 모스크는 터키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16세기에 설계한 오스만 건축의 정점이다. 평생 477개의 건축물을 설계한 시난 자신도 최고의 걸작이라 칭한 셀리미예 모스크는 오스만의 독특한 문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유산이기 때문에 터키를 방문했다면 반드시 가봐야 한다.

셀리미예 모스크는 촘촘한 첨탑 구조와 중앙 돔이 눈길을 끄는데 그 중 지름 31.22m의 대형 돔이 가장 눈에 띈다. 시난이 가장 공들여 설계한 대형 돔은 우아한 외관과 더불어 500년 전에 현대 기술로도 쉽지 않은 설계와 건축을 어떻게 구현해 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철저히 기하학에 입각해 설계된 과학적인 면모에 서유럽 양식과 구분되는 오스만 양식의 우아함을 더한 미학적 면모까지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까지 사로잡는 외관은 숭고함 그 자체다. 셀리미예 모스크 내부 역시 외관만큼 감탄을 자아낸다. 모스크 곳곳에 뚫린 99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 모스크의 우아함과 조화를 이룬다.

우동섭 여행작가 xyu2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