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유럽계 자금…수급불안 진앙되나
주식시장이 유럽계 자금의 ‘썰물’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 주식시장에서 8조원어치 넘게 한국 주식을 사며 외국계 순매수세를 주도한 유럽계 자금이 곳곳에서 발을 뺄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연초부터 낙폭이 큰 대형주를 집중 매수한 만큼 이미 적잖은 차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되고 도이치뱅크 사태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등으로 ‘안방’ 사정도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자칫 ‘소피아 부인(유럽계 자금)’의 변심에 이달 이후 주식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럽風’에 우왕좌왕

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335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하루 순매도 규모로는 7월6일(4300억원 순매도) 이후 3개월여 만에 최대치다. 올 3월 이후 줄곧 매수세를 유지했던 외국인은 지난달 말부터 순매도를 기록하는 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외국인 자금 흐름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올 들어 11조102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이탈 조짐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증권가의 관심은 특히 영국,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등 유럽계 자금 동향에 쏠리고 있다. 통상 ‘단기성 자금’으로 불리는 유럽계 자금이 외국인 매수세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럽계 자금은 7개월 연속으로 한국 주식을 사며 누적 순매수 규모가 8조8480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정보기술(IT)주를 비롯해 조선·화학·철강 대형주를 주로 사며 코스피지수를 1950대에서 2050대까지 끌어올렸다. 통상 외국계 자금의 ‘큰형’이라는 미국계 자금을 순매수 규모(4조9490억원)에서 압도하며 시장 주도권을 쥐었다.

유럽계 자금이 조만간 이탈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유럽계 자금에 조세피난처 등에 근거를 둔 투기성 자금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외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헤지펀드 특성상 돌발 변수가 발생하면 일시에 자금을 빼가곤 했다는 것. 2010년 이후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유출입은 단기투자 비중이 높은 유럽계 자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통상 유럽계 자금은 롱쇼트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최근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를 계기로 차익을 실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조세피난처에 기반한 펀드들이 10월이나 11월에 결산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유럽 자금 이탈 가능성을 키우는 원인으로 꼽힌다.

◆커지는 유럽발 불안

유럽 내 정치·경제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점도 유럽 자금 이탈을 재촉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미국 대선과 금리인상 같은 미국 변수는 진정되거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지만 유럽 변수는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어서다.

김진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중앙은행(ECB)의 경기부양 의지가 미덥지 않고 브렉시트 우려 등으로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31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불안 요인이 커지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도이치뱅크를 필두로 미국 법무부가 크레디트스위스, 바클레이즈, UBS 등 유럽 주요 은행들에 대규모 벌금을 부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부담”이라고 했다.

이 밖에 최근 3개월가량 달러화 대비 유로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점도 유럽계 자금 유출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유럽계 자금 입장에선 유로화 등으로 원화자산에 투자할 때 얻는 수익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