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 텐]일본 드리프트 문화의 과거와 현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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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ing Tech -[1]
드리프트 주행이 공식 경주에서 선보인 건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이다. 이곳에서 드라이버들은 굴곡 심한 오프로드에서 속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랠리카를 미끄러뜨리며 달렸다. 이들에게 드리프트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걸 인상 깊게 본 일본의 츠치야 케이치 등 후지 프레시맨 레이스(Fuji Freshman Race)에서 활동하는 드라이버들이 일반도로 위에서 구현하면서 본격적인 드리프트 문화가 형성됐다. 츠치야 케이치를 ‘도리킹(드리프트 킹의 줄임말)’이라고 부른 건 이런 연유에서다.
이와 함께 일본의 만화 ‘이니셜D’가 연재되면서 드리프트 문화가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로 급격하게 퍼졌다. 당시 드리프트에 적합한 FR(앞 엔진 후륜구동)차량 뿐만 아니라 FF(앞 엔진 전륜구동)와 4WD(사륜구동) 차량도 소수지만 드리프트를 즐겼다. 특히 FF 드리프트의 경우 일반적인 FR차량의 드리프트와 구별하기 위해 ‘F도리’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화려하게 꾸민 차량으로 위협 운전을 하는 집단이 성행했다. 이들은 ‘공동 위험형 폭주족’이라고 불렸다. 1980년대 이후에 이런 무식한 집단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들은 산으로 갔다. 고갯길 등에서 무모하게 운전하는 롤링족, 또한 커브가 많은 수도권의 고속도로 등에서 달리는 서킷족(또는 룰렛족)이라고 불리는 ‘불법 경주형 폭주족’이 나타나게 됐다.
과시 욕구가 충만했던 이들은 보다 위험한 드라이빙 테크닉을 선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드리프트 주행도 그 기법의 하나였다. 특히 도로 외에 항만, 주차장 등에서 드리프트 주행을 주로 하는 사람들을 ‘드리프트족’이라고 불렀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드리프트 주행을 하면 타이어가 비명을 지른다. 보다 강력한 드리프트를 위해 튜닝된 차량은 배기음도 엄청났다. 타이어 찢어지고 타들어가며 발생하는 마찰음, 배기음 등의 소음이 주변 주민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운전자가 차량 컨트롤에 실패하면 사고로 이어졌다. 스핀 등이 일어나면서 도로에 접한 민가와 상가, 가드레일, 혹은 통행하고 있는 일반 차량 등과 추돌했다.
또 도로에서는 벼랑 아래로, 항만 지구에서는 바다에 추락해 드라이버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위험도가 높은 좁은 도로는 이런 드리프트족의 성지 역할을 했다. 이런 곳들은 난폭 운전을 두려워한 주민들이 심야 외출을 하지 않는 등의 폐해도 낳았다. 개인의 취미 범주를 벗어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진 것이다. 급기야 전국에서 경찰의 드리프트족에 대한 일제 검문이 반복 실시됐다.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나섰다. 드리프트족이 집결하는 도로 등은 노면에 파도 모양의 요철을 설치하는 ‘스피드 세이브 공법’과 노면에 홈을 파서 미끄러지기 어렵게 하는 ‘그루빙 포장’ 등의 방어책을 세운 것이다. 드리프트 주행을 위한 뒷바퀴의 슬라이드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노면 가공을 하자 드리프트족들은 이전처럼 퍼포먼스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전국 경찰이 드리프트족 단속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자체 역시 드리프트족이 출몰하는 구간마다 이같은 봉쇄책을 적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자동차 마니아들은 물론 프로 드라이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드리프트는 일본에서 주도적으로 문화가 형성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이마무라 요오이치나 타카하시 쿠니아키등 D1 그랑프리의 초대 드라이버들 대부분은 드리프트족 출신이었다.
고두일 객원 칼럼리스트(엔지코퍼레이션 대표, 모터랩 선임연구원)
드리프트 주행이 공식 경주에서 선보인 건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이다. 이곳에서 드라이버들은 굴곡 심한 오프로드에서 속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랠리카를 미끄러뜨리며 달렸다. 이들에게 드리프트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걸 인상 깊게 본 일본의 츠치야 케이치 등 후지 프레시맨 레이스(Fuji Freshman Race)에서 활동하는 드라이버들이 일반도로 위에서 구현하면서 본격적인 드리프트 문화가 형성됐다. 츠치야 케이치를 ‘도리킹(드리프트 킹의 줄임말)’이라고 부른 건 이런 연유에서다.
이와 함께 일본의 만화 ‘이니셜D’가 연재되면서 드리프트 문화가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로 급격하게 퍼졌다. 당시 드리프트에 적합한 FR(앞 엔진 후륜구동)차량 뿐만 아니라 FF(앞 엔진 전륜구동)와 4WD(사륜구동) 차량도 소수지만 드리프트를 즐겼다. 특히 FF 드리프트의 경우 일반적인 FR차량의 드리프트와 구별하기 위해 ‘F도리’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화려하게 꾸민 차량으로 위협 운전을 하는 집단이 성행했다. 이들은 ‘공동 위험형 폭주족’이라고 불렸다. 1980년대 이후에 이런 무식한 집단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들은 산으로 갔다. 고갯길 등에서 무모하게 운전하는 롤링족, 또한 커브가 많은 수도권의 고속도로 등에서 달리는 서킷족(또는 룰렛족)이라고 불리는 ‘불법 경주형 폭주족’이 나타나게 됐다.
과시 욕구가 충만했던 이들은 보다 위험한 드라이빙 테크닉을 선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드리프트 주행도 그 기법의 하나였다. 특히 도로 외에 항만, 주차장 등에서 드리프트 주행을 주로 하는 사람들을 ‘드리프트족’이라고 불렀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드리프트 주행을 하면 타이어가 비명을 지른다. 보다 강력한 드리프트를 위해 튜닝된 차량은 배기음도 엄청났다. 타이어 찢어지고 타들어가며 발생하는 마찰음, 배기음 등의 소음이 주변 주민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운전자가 차량 컨트롤에 실패하면 사고로 이어졌다. 스핀 등이 일어나면서 도로에 접한 민가와 상가, 가드레일, 혹은 통행하고 있는 일반 차량 등과 추돌했다.
또 도로에서는 벼랑 아래로, 항만 지구에서는 바다에 추락해 드라이버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위험도가 높은 좁은 도로는 이런 드리프트족의 성지 역할을 했다. 이런 곳들은 난폭 운전을 두려워한 주민들이 심야 외출을 하지 않는 등의 폐해도 낳았다. 개인의 취미 범주를 벗어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진 것이다. 급기야 전국에서 경찰의 드리프트족에 대한 일제 검문이 반복 실시됐다.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나섰다. 드리프트족이 집결하는 도로 등은 노면에 파도 모양의 요철을 설치하는 ‘스피드 세이브 공법’과 노면에 홈을 파서 미끄러지기 어렵게 하는 ‘그루빙 포장’ 등의 방어책을 세운 것이다. 드리프트 주행을 위한 뒷바퀴의 슬라이드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노면 가공을 하자 드리프트족들은 이전처럼 퍼포먼스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전국 경찰이 드리프트족 단속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자체 역시 드리프트족이 출몰하는 구간마다 이같은 봉쇄책을 적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자동차 마니아들은 물론 프로 드라이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드리프트는 일본에서 주도적으로 문화가 형성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이마무라 요오이치나 타카하시 쿠니아키등 D1 그랑프리의 초대 드라이버들 대부분은 드리프트족 출신이었다.
고두일 객원 칼럼리스트(엔지코퍼레이션 대표, 모터랩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