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국가 간의 경쟁우위를 바꿔놓고 있다. 생산요소 중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면서 노동력 부족 등의 문제로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못했던 국가들에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싱가포르와 호주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는 지리적 이점과 높은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항공기 부품, 제약산업 등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하지만 인구가 적고 인건비가 비싸 제조업을 키우기가 어려웠다. 최근에는 고령화 문제까지 겹쳐 기존 산업의 경쟁 우위도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높았다.

이 같은 문제를 4차 산업혁명으로 극복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이 분야에 32억싱가포르달러(약 2조615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3차원(3D) 프린팅 시설도 문을 열었다. 싱가포르 기업들은 여기서 의료기기와 항공기 부품 관련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 이스와란 싱가포르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제조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비용은 낮출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싱가포르 기업들이 미래에 더 나은 위치를 점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도 올해 4월 ‘인더스트리 4.0 태스크포스’를 총리실 산하에 설치하고 투자에 나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제조업을 키워 광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다. 지난해 11월에는 독일로부터 4차 산업혁명 추진에 필요한 도움을 받기로 하고 자문그룹까지 꾸렸다. 발달한 낙농업을 바탕으로 한 식음료산업과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춰진 의료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지질 탐사에 드론을 동원하는 등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기존 주력 산업인 광업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김상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실상 전통 제조업의 공백지대로 여겨지던 지역도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