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국 전통 만다라 한울제도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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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연배 기자] 서울 인사동 화랑가에서 기존 미술 작품들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일명 한울제도라 불리는 이 장르는 일종의 '깨달음의 그림'들이다. 불교적이지만 불교라는 종교의 틀을 벗어나 있다. 작품 제목과 이미지들을 보면 중세 카톨릭 성당에서 맛볼 수 있는 유리 그림(스테인드 글라스)이나 이슬람권의 아라베스크 문양에 더 가깝다.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그려온 “깨달음의 그림”에는 ‘만다라(mandala)가 있다.
만다라는 원래 ‘신이 거주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밀교가 창출한 ‘성역공간’을 뜻하는데, ‘중심 또는 본질을 얻는다’는 뜻으로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인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권역에서도 그 역사적 흔적들을 찾을 수 있는 만다라의 원형으로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선종 위앙종과 고려시대 불교의 동그라미 그림을 모아놓은 종문원상집이 있다.
위산과 앙산의 문파를 보통 위앙종이라고 부르는데, 위앙종의 특징은 원상을 그려서 제자들을 지도하는 데 있다. '조당집' 18권 ‘앙산장’에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앙산이 언젠가 눈을 감고 앉았을 때, 어떤 스님이 가만히 걸어와 선사의 곁에서 모시고 섰다. 앙산이 문을 열고 땅 위에다 원상을 그리고는 원상 안에다 수자를 써서 그 스님에게 보였는데,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어떤 사람이 앙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그러자 앙산이 손으로 원상을 그리고 원상 안에다 불 자를 써서 대답했다.
사실 원상을 그려서 법을 보이거나 제자를 제접하는 것은 위앙종뿐만이 아니라 석두희천 계통에도 보이며, 특히 마조도일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그 문화적 배경은 무엇일까?
마조도일 이후의 중국선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방 할 등의 기관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마조도일 이전에는 경전의 가르침을 통해서 제자를 가르쳤다면 그 이후에는 ‘눈이나 귀로 직접 지각할 수 있는 방편’을 사용하였다. 송대 이후에 유행하는 시문학이나 공안의 사용도 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심볼(symbol)’이나 ‘이미지(image)’를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 마조선 이후의 특징이다. 원상도 이러한 표현방법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만다라가 정형화되고 도식화된 것인데 비해, ‘제도’는 각자마다 다르게 그려지는데, 이는 제도를 하는 것이 예술적 창조행위인 동시에 불교적 선이나 명상과 유사한 공부 과정임을 의미한다.
사용하는 도구와 작업방식도 이채롭다. 오로지 붉은색 볼펜과 푸른색 볼펜만을 사용해서 그려나간다. 볼펜으로만 작업하는 작가들로는 스페인의 극사실주의 화가 후안 프란시스코 카사스(Juan Francisco Casas)와 뉴욕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화가 이일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과 결정적인 차이는 ‘그리는 작품’이 아닌 ‘그려지는 작품’이란 점이다. 제도를 할 때는 사전에 어떠한 구상이나 상상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통해 발현되는 기의 흐름을 따라 그려나가기 때문이다. 하나의 제도를 완성하는 데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일관되게 전체를 구성해 가는 질서가 작용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드러운 흐름인 기를 따라 자연 자체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제대로 타려면 될 수 있으면 생각과 상상을 끊어내고 일종의 몰입상태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선이나 명상과 유사한 정신 수련과정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출품한 이들은 교사, 요리사, 한의사, 약재상, 가정주부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을 보면 단순한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는 작품 하나 하나가 상당히 정제된 느낌을 준다. 소란한 뉴스를 잠시 피해 고요와 평화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만한 전시회다. 10월 19일~25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올’에서 만날 수 있다.
문연배 한경닷컴기자 bretto@hankyung.com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그려온 “깨달음의 그림”에는 ‘만다라(mandala)가 있다.
만다라는 원래 ‘신이 거주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밀교가 창출한 ‘성역공간’을 뜻하는데, ‘중심 또는 본질을 얻는다’는 뜻으로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인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권역에서도 그 역사적 흔적들을 찾을 수 있는 만다라의 원형으로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선종 위앙종과 고려시대 불교의 동그라미 그림을 모아놓은 종문원상집이 있다.
위산과 앙산의 문파를 보통 위앙종이라고 부르는데, 위앙종의 특징은 원상을 그려서 제자들을 지도하는 데 있다. '조당집' 18권 ‘앙산장’에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앙산이 언젠가 눈을 감고 앉았을 때, 어떤 스님이 가만히 걸어와 선사의 곁에서 모시고 섰다. 앙산이 문을 열고 땅 위에다 원상을 그리고는 원상 안에다 수자를 써서 그 스님에게 보였는데,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어떤 사람이 앙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그러자 앙산이 손으로 원상을 그리고 원상 안에다 불 자를 써서 대답했다.
사실 원상을 그려서 법을 보이거나 제자를 제접하는 것은 위앙종뿐만이 아니라 석두희천 계통에도 보이며, 특히 마조도일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그 문화적 배경은 무엇일까?
마조도일 이후의 중국선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방 할 등의 기관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마조도일 이전에는 경전의 가르침을 통해서 제자를 가르쳤다면 그 이후에는 ‘눈이나 귀로 직접 지각할 수 있는 방편’을 사용하였다. 송대 이후에 유행하는 시문학이나 공안의 사용도 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심볼(symbol)’이나 ‘이미지(image)’를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 마조선 이후의 특징이다. 원상도 이러한 표현방법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만다라가 정형화되고 도식화된 것인데 비해, ‘제도’는 각자마다 다르게 그려지는데, 이는 제도를 하는 것이 예술적 창조행위인 동시에 불교적 선이나 명상과 유사한 공부 과정임을 의미한다.
사용하는 도구와 작업방식도 이채롭다. 오로지 붉은색 볼펜과 푸른색 볼펜만을 사용해서 그려나간다. 볼펜으로만 작업하는 작가들로는 스페인의 극사실주의 화가 후안 프란시스코 카사스(Juan Francisco Casas)와 뉴욕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화가 이일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과 결정적인 차이는 ‘그리는 작품’이 아닌 ‘그려지는 작품’이란 점이다. 제도를 할 때는 사전에 어떠한 구상이나 상상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통해 발현되는 기의 흐름을 따라 그려나가기 때문이다. 하나의 제도를 완성하는 데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일관되게 전체를 구성해 가는 질서가 작용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드러운 흐름인 기를 따라 자연 자체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제대로 타려면 될 수 있으면 생각과 상상을 끊어내고 일종의 몰입상태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선이나 명상과 유사한 정신 수련과정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출품한 이들은 교사, 요리사, 한의사, 약재상, 가정주부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을 보면 단순한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는 작품 하나 하나가 상당히 정제된 느낌을 준다. 소란한 뉴스를 잠시 피해 고요와 평화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만한 전시회다. 10월 19일~25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올’에서 만날 수 있다.
문연배 한경닷컴기자 brett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