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김영란법과 소통
요즘 공직사회에서는 ‘김영란법’이 단연 톱 이슈인 것 같다.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도 공공기관들은 자체적으로 ‘윤리규정’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번에 정한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과 비슷한 부패행위 방지 기준을 운용해왔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들도 기준상으로는 종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공직사회가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종전에 기관 내부 징계로 마무리되던 일이 앞으로는 형사기소 대상으로 벌이 엄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파라치’라고 하는 신고보상제도도 부담스러운 일이고, 공직자가 자주 만나야 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에게도 동시 적용돼 처신이 더욱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부세종청사 공무원 분위기를 보면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엄격한 제도에 불편해하면서도, 공무원의 박봉으로 철철이 날아드는 경조사 고지서와 후원요청서를 감당하기 어렵고, 쥐꼬리만도 못한 업무추진비로는 정책고객들과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현실에서 내심 잘됐다는 기류도 느껴진다. 여기에 직무관계자와는 김영란법에서 허용된 범위의 식사나 선물조차도 일절 하지 말라는 별도 지시까지 더해져 앞으로는 공무원끼리 집과 사무실만 왔다갔다 하는 것 외에는 사람을 만날 일이 전혀 없다는 자조 섞인 푸념까지 들린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강조했듯이 청렴은 공직자가 지켜야 할 기본이고 이걸 잘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사회가 청렴에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이는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기 전 꼭 넘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법이 윤리적 영역에서 풀어야 일을 형사법적 영역으로 끌어올려 정책부서 공직자에게 꼭 필요한 소통 통로까지 차단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중앙부처는 중요한 현안과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정책을 추진하는 기관들이고, 정책은 이해당사자와 언론 및 정치권 간에 긴밀한 소통과 조정을 거쳐야 바른 답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면서 중앙부처가 본과 베를린으로 나뉜 독일의 행정수도 본을 방문해 보니, 본의 중앙부처 공무원은 새로운 일이나 중요 정책 사안을 협의하기 위해 베를린에 왔다갔다 하다 보면 지쳐서 업무 추진을 포기하는 일이 많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세종시로 격리된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김영란법을 핑계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신문기사만 보고 정책을 추진한다면 급변하는 세계경제하에서 눈앞에 닥친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걱정이 크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공직자와 언론, 이해관계자, 정치인들이 김영란법에 방해받지 않고 편안한 자리에서 자주 만나 합법적으로 밥 먹고 소통할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서종대 < 한국감정원장 jjds60@ka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