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근하는 신동빈 회장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수사로 신 회장을 비롯해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24명을 기소했다. 연합뉴스
< 출근하는 신동빈 회장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수사로 신 회장을 비롯해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24명을 기소했다. 연합뉴스
검찰이 19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해 21명을 일괄 기소하며 4개월여에 걸친 롯데 경영비리 수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 회장 등 오너 일가뿐 아니라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채정병 롯데카드 사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등 그룹 핵심인사가 다수 재판에 넘겨졌다. 대기업 수사에서 오너 일가와 주요 경영진이 한꺼번에 기소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무더기 기소로 법정에서 명예 회복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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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롯데 24명 무더기 기소] 롯데 핵심CEO 13명 중 6명 재판에 넘긴 검찰…지리한 법정싸움 예고
수사팀은 “2004년 정책본부장에 오른 뒤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에 관여해왔다”며 신 회장에게 그룹 경영비리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신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과 공모해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을 서미경 씨(신 총괄회장의 셋째부인) 소유 회사로 넘겨 774억원의 손실을 회사에 끼쳤다고 밝혔다. 또 △부실화된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와 주식 매수에 코리아세븐 등 계열사를 동원해 이들 회사가 471억원의 손해를 입게 했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롯데피에스넷과 관련해서는 신 회장뿐 아니라 그룹 핵심 임원인 황 사장과 소 사장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검찰 관계자는 “황 사장은 당시 정책본부 지원실장으로서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를 총괄했고 코리아세븐 대표였던 소 사장은 투자가치가 없는 주식을 고가에 매수했다”고 기소 이유를 설명했다.

허 사장과 강 사장 등 주력 계열사 대표들도 검찰 기소를 피하지 못했다. 허 사장에게는 롯데케미칼 원료 수입거래 때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넣어 회사에 50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배임)와 법인세 220억원을 부당 환급받은 혐의(조세포탈) 등이 적용됐다. 강 사장은 롯데홈쇼핑 채널 재승인 심사 당시 형사처벌 내역 등을 누락한 허위 문서를 제출해 인가를 취득한 혐의(방송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이 롯데그룹의 ‘심장’인 정책본부 핵심 인사와 주력 계열사 사장까지 ‘무더기 기소’하며 수사를 마쳤지만 ‘용두사미’ ‘초라한 수사’라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수사 초기 검찰이 “수사의 중심”이라고 말한 오너 일가의 비자금은 밝혀내지 못했다. 수사의 또 다른 축이라고 밝혔던 오너 일가의 부당한 부동산 거래 의혹도 기소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롯데 측은 검찰이 기소한 혐의에 대해서도 “신 총괄회장 때의 일로 신 회장에겐 책임이 없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의심스러웠던 자금의 성격과 오너 일가의 연결고리 등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이어 “부동산 거래도 범죄 사실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성격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러키파이 인수 등 중국 투자 실패 등과 관련한 의혹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법원에서도 유죄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그룹의 총체적 비리와 사유화 행태가 드러났다”며 “영장 기각을 수사 성패를 좌우하는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회장 등 주요 피의자의 영장이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됐지만 법정에서는 유죄를 입증할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검찰 기소 내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형 로펌 형사 전문 변호사는 “이번 기소 내용을 보면 ‘조그마한 먼지’까지 모두 끌어모은 느낌이지만 세세히 따져보면 모두 다툼의 여지가 많다”며 “롯데 측에서 혐의를 하나하나 반박하면 검찰이 증거를 내세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한신/고윤상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