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19일 2007년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이 북한의 의견을 물은 뒤 결정됐다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또 그와 같은 제안을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처음 했으며, 이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이완영 새누리당, 김병기 민주당, 이태규 국민의당 간사가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 원장은 “김 전 원장이 제일 먼저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자고 제기한 게 맞느냐”는 이완영 의원의 질의에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황당스럽고 이해가 안된다. 참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답했다.

이 원장은 “문 전 대표가 김 전 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자고 결론을 낸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송 전 장관 회고록에 대해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며, 근거를 치밀하게 갖고 기술돼 있는 것으로 본다”며 “구체적이고 사리에 맞기 때문에 사실이나 진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병기 의원은 “이 원장 개인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한다고 한 것”이라면서 “자료에 근거한 것이냐는 질문에 ‘자료를 본 것은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시기에 대해서는 “20일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당시 대통령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16일에 사실상 최종 결정이 났고, 이후 송 전 장관이 찬성 입장을 굽히지 않아 추가로 회의를 열었다며 사전에 북한의 의견을 구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이 원장은 당시 노 대통령에게 북한의 의견을 담아 보고했다는 쪽지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정보 사안이기 때문에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 원칙이 적용돼 말하기 어렵다”며 “과연 쪽지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을 때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기준에서 볼 때는 지금 말할 시점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자료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 중”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이 원장은 “쪽지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다 없다 자체가 기밀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지 못한다”며 “북한이 불량 국가이기는 하지만 이는 국정원 신의에 대한 문제”라고 답했다.

이 원장은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한의 의견을 구할 수 있느냐”는 여당 의원들의 질문에 “정말 어처구니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이라며 사후 통보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원장은 “국정원은 정치의 ‘정’자에도 다가서려 하고 있지 않다”며 “이런 논란에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휘말리는 것은 극히 부적절하기 때문에 정치에서 벗어나는 게 국정원 운영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배후 실세라는 의혹을 받는 최순실 씨에 대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업과 접촉했는데 국정원과의 연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는 바 없다.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 측은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을 통해 “국정원이 야당 대선 후보 흠집 내기에 나섰다”며 “국정원이 또 대선판에 뛰어든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반발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