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문학상 받는 케냐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로 생각해주는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받지는 못했지만 밥 딜런의 수상 또한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봅니다. 단지 훌륭한 음악가여서가 아니라 작품에 숨은 의미가 크기 때문에 상을 준 것이지요.”

케냐 출신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78·사진)는 20일 이같이 말했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캠퍼스 영문학과 교수인 그는 토지문화재단이 제정한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지난 19일 방한했다.

응구기는 최근 몇 년 동안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돼 왔다. 올해는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혔다. 그는 선진국이 은밀한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을 착취하는 신식민주의를 비판해 온 작가다. 케냐에서 1977년 지배층을 풍자하는 희곡을 집필·상연했다가 투옥돼 1년간 옥살이를 했다. 당시 감옥에서 화장지에 쓴 장편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로 유명해졌다.

응구기는 “투옥 전 일본에 갔을 때 영어로 번역된 김지하 시인의 저항적 작품을 우연히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김지하 시인은 박경리 선생의 사위여서 이번 박경리문학상 수상은 개인적으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김지하 시인의 ‘오적’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정치 권력의 탄압을 받는 케냐 민중에게도 시사점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죠. 당시 나이로비대 영문학과 교수였는데 그의 작품 복사본을 케냐로 갖고 가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부당하게 투옥된 뒤에도 한국에서 같은 경험을 한 김지하 시인을 떠올리며 힘을 얻었습니다.”

응구기는 당초 영어로 작품 활동을 했으나 《십자가 위의 악마》를 기점으로 영어를 버리고 케냐 토착어인 기쿠유어로 글을 썼다. 언어로 독립하지 못하면 신식민주의를 진정으로 타파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언어 사용은 상하 권력관계를 투영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도 한국어를 말살하려고 하지 않았느냐”며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여도 다른 언어와 수평적 상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쿠유어로 작품을 쓰면 많은 사람이 못 읽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분열돼 있다기보다는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답했다. 그는 기쿠유어로 쓴 작품을 영어로 자신이 직접 번역한다. 응구기는 “상상력은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작품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자양분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국내에 번역돼 있는 응구기의 작품은 《십자가 위의 악마》(창비)를 비롯해 《한 톨의 밀알》 《울지마, 아이야》(이상 은행나무), 《피의 꽃잎들》(민음사) 등이 있다. 토지문화재단은 오는 25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 연세삼성학술정보관에서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을 열고 응구기에게 상장과 상금 1억원을 준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