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1960년대 분유를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시중에서 파는 일본산 분유는 가격이 비싸 일반인은 엄두를 못냈다. 미군이 구호물자로 나눠준 전지분유를 먹을 수 있는 운 좋은 아이도 많지 않았다.

1967년 남양유업에서 일하던 임영식 박사는 가난한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조제분유를 개발했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크게 줄었다. 임 박사의 아들 임광세(사진)는 어릴 적부터 이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의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리고 유산균 전문가가 됐다. 윌(한국야쿠르트), 쿠퍼스(한국야쿠르트), 마시는 퓨어(매일유업) 등을 개발한 그는 현재 풀무원다논 연구소장으로 있다. 임 소장을 서울 고려대에 있는 풀무원다논 연구소에서 만났다.

아기 똥기저귀 뒤져 유산균 데이터 구축

임 소장은 아버지처럼 유제품을 연구하겠다며 축산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처음엔 유제품을 만들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첫 직장인 한국야쿠르트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어느 날 우연히 프로바이오틱스의 일종인 비피더스 연구 결과를 접했다. 비피더스는 모유를 먹는 아이들 장에 많은 균이다. 모유를 먹으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장이 튼튼한 게 비피더스 덕분이라는 내용이었다. 비피더스를 유제품에 넣으면 모유를 먹지 못한 아이도 그만큼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 아이들에게 있는 비피더스 균이 필요했다. 그 균은 금방 버려진 아기들의 똥기저귀에 있었다. 하루에 100개 이상 뒤졌다. 그는 “미생물을 연구하는 것은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책이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장내 세균을 연구한다는 것은 변을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균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변을 볼수록 더 많은 균을 채취할 수 있다고도 했다.

비피더스 균을 채취한 뒤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비피더스는 공기에 노출되면 바로 죽기 때문에 산소가 없는 공간에서 실험해야 했다. 또 비피더스 균은 몸 안에서는 강력한 역할을 하지만 우유에서는 잘 자라지 않았다. 상품화가 쉽지 않은 이유였다. 수천개의 균을 채취했다. 그중 기능이 뛰어나면서도 오래 사는 후보 5개를 뽑았다. 이후 배양했을 때 맛이 좋은 것을 찾아내 제품화했다. 6년이 넘어서야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임 소장은 “그동안은 종균을 모두 수입해 사용했는데, 한국 사람에게 맞는 고유한 균을 발견했다”며 “미생물 연구로 아버지처럼 한국인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에서 딸까지…3대로 이어진 유제품 연구

[人사이드 人터뷰] 임광세 "똥기저귀 매일 100개 뒤져 한국인 장 지켜줄 유산균 찾았죠"
이후 그는 유산균 연구에 더욱 매달렸다. 1989년부터 그가 개발한 제품만 40여개가 넘는다. 유제품 역사에 히트상품으로 기록된 제품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업계에서는 평가한다. 1년에 신제품을 2~3개씩 내놓으면서도 기초기술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 27년간 국내외에서 43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허도 22건을 받았다. 임 소장은 “제품 개발 등으로 바쁠 때는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다음 세대 연구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가정에는 소홀했다. 밤 11시에 집에 들어가면 오늘은 일찍 왔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늘 공부하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딸에게 영향을 줬다. 서울여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딸은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며 미생물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다.

딸이 같은 분야를 연구한다고 할 때 기쁘지만은 않았다. 임광세의 딸로 소개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는 “처음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 임영식의 아들로 알려졌다. 다른 사람들은 부럽다고 했지만 아버지보다 잘해야 내 이름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부담스렀다”고 말했다. 그는 “딸도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했다.

딸의 결정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응원했다. 딸은 고려대 대학원에서 장내 세균을 연구하고 있다. 임 소장은 “유제품을 연구하던 아버지에서 시작된 연구가 프로바이오틱스를 연구하는 나를 거쳐 장내 세균을 다루는 딸로 이어졌다”며 “모든 연구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데 한 세대에서 마치지 못한 연구를 3대에 걸쳐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산균, 만병통치약도 유해물질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유산균이 건강식품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팔리고 있는 제품도 수십개에 달한다.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광고도 하고 있다. 임 소장은 그러나 유산균을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약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유산균은 장 안에 있는 숫자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효과가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장 안에 100조개 이상의 유산균이 있는데, 요구르트 안에는 100억~1000억개 정도가 있다. 유산균이 1000배가 넘게 있는 장 안의 환경을 바꾸려면 요구르트를 한 번에 1000병 이상 마셔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했다. “따라서 꾸준히 좋은 유산균을 섭취해 건강과 면역력에 도움을 주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유산균 유해성 논란에 대해 임 소장은 “유산균은 GRAS(미국 식품의약국에서 등재한 안전 원료 인정 제도)에 등재된 원료로, 위험도가 쌀과 같은 등급이에요. 쌀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찌지만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부족한 듯 그는 “다이어트 약을 먹었을 때 살이 찌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모아서 다이어트 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결과를 발표한다면 그것은 연구 설계나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균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99%의 균이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라고도 했다.

세계인들이 한국서 개발한 요구르트를 먹게 할 것

임 소장의 다음 목표는 세계에서 팔리는 한국산 요구르트를 개발하는 것이다. 유제품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외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한국에서 판매하는 경우는 많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위해 당 등 첨가물을 거의 넣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요구르트를 만들고 있다. 예전엔 기능성을 더하는 것이 인기였다면 요즘은 자연 그대로를 강조하는 제품이 세계적 트렌드라고 그는 설명했다.

개발은 더 어려워졌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천연이라 간단해 보이지만 첨가물이 안 들어간 천연원료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비용은 두세 배 더 들고 맛은 떨어진다. 예를 들어 딸기맛 요거트를 만든다고 할 때 딸기 향료를 넣는 것이 천연 딸기를 쓰는 것보다 향과 맛이 좋고, 비용도 적게 든다. 천연은 농도를 높여도 맛이 잘 나지 않고 가격도 비싸다.

그는 “한국에는 훌륭한 연구진이 많고, 유산균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돼 다른 나라와 비교해 연구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 유산균
탄수화물 발효시켜 젖산 생성…동식물 탄생 이전부터 존재


■ 프로바이오틱스
인체에 유익한 살아있는 미생물…면역력 높이는 유산균 등도 포함

유산균은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젖산(유산)을 생성하는 세균이다. 유산을 내는 균이라고 해서 유산균으로 불린다. 1개의 세포로 이뤄진 생물이지만 동물에도 식물에도 속하지 않는다. 지구상에 동식물이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크기는 2~4 정도다. 1는 1000분의 1㎜다.

일반 세균은 꼬리가 달려 이동할 수 있지만 유산균은 운동 능력이 없다. 에로코쿠스, 카노박테리움, 엔테로코커스 등 16가지 종류가 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바이오틱스는 유산균과는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프로바이오틱스는 살아 있는 미생물로 적정량을 먹었을 때 인체에 유익한 균을 의미한다. 유산균이나 효모, 장내세균 가운데 몸에 이로운 종류만 프로바이오틱스에 포함된다.

요구르트 광고 등으로 잘 알려진 비피더스는 유산균이 아니라 장내 세균이다. 유산뿐만 아니라 초산도 분비한다. 기능과 특성이 유산균과 비슷해 유산균과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 유익한 활동을 하는 장내세균이므로 프로바이오틱스에 속한다.

미생물을 연구한 결과 몸에 이로운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 프로바이오틱스로 분류된다.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해선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포함되는 균의 종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에 속하는 유산균은 면역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꽃가루 알레르기는 면역세포인 ‘Th1 세포’에 비해 ‘Th2 세포’가 상대적으로 많아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Th1 세포를 늘리거나 Th2 세포를 줄이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일부 유산균은 Th1세포를 활성화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면역 균형을 개선해준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