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연 5% 수익 보장" 덜컥 물었다간…평생 '쪽박' 찰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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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시대의 달콤한 유혹 유사수신 명문대 나온 직장인도 당했다
똑똑한 20~30대도 낚여
과거처럼 '묻지마 투자' 강요 아닌 고급 호텔서 투자설명회 열고
온·오프라인 광고로 투자자 유혹
유사수신 수법 갈수록 고도화
페이퍼컴퍼니·IP 주소 해외에…가상화폐·가짜 스마트폰 앱 동원
투자 정보에 밝은 사람도 속여
똑똑한 20~30대도 낚여
과거처럼 '묻지마 투자' 강요 아닌 고급 호텔서 투자설명회 열고
온·오프라인 광고로 투자자 유혹
유사수신 수법 갈수록 고도화
페이퍼컴퍼니·IP 주소 해외에…가상화폐·가짜 스마트폰 앱 동원
투자 정보에 밝은 사람도 속여
“결혼도 해야 할 텐데, 돈은 언제 모으려고?”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지난해 말 송년회에 갔다가 혹하는 얘기를 들었다. 군대 선임이던 김모씨는 “글로벌 투자은행 N사가 한국에 인터넷은행을 세우려고 하는데 투자하면 3개월마다 연 10% 이상의 금리를 준다”고 귀띔했다. 안 그래도 돈을 굴릴 곳이 없어 고민하던 터였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그는 3년 전 중소기업에 가까스로 취업해 약 1000만원을 모았다.
처음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대목에서 의심했다. 하지만 구체적이었다. 호텔에서 열리는 투자설명회에 참석하고선 의구심이 점점 풀렸다. 이들은 “한국에 설립할 인터넷은행은 단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KT나 카카오와 달리 실질적인 재테크 투자자를 모집한다”며 “15개월 동안 복리로 128%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N사의 한국지사가 서울 여의도 IFC 빌딩에 입주해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무엇보다 김 선임이 “이미 3개월 전 투자해 10% 수익을 얻었다”면서 통장 내역을 보여줬다. 결국 그간 모은 1000만원을 투자했다가 올해 초 모두 날렸다. 인터넷은행은 실체가 없었다. 믿었던 선임은 ‘중간 관리책’이었다.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박씨는 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버렸다.
◆금융 좀 아는 30대도 낚인다
2012년 이후 유사수신 사범은 매년 1000명 안팎이 잡히고 있다. 올해는 9월 말까지 1404명이 유사수신 혐의로 검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712명)의 두 배다.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을 미끼로 하는 유사수신 범죄는 올 들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유사수신 사기범들은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주무대로 활동한다. 금융 지식이 없는 노인들은 물론이고 금융을 조금 안다고 하는 30대들도 이들의 수법에 당하고 있다.
지난 6~7월 경찰청의 불법사금융 특별단속 결과를 보면 유사수신 피해자의 5명 중 1명꼴로 30대(21.5%)였다. 50대(23.1%) 못지않게 피해자가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50대는 은퇴자금을 마련하려다가 당하는 반면 30대는 결혼자금을 모으려고 욕심을 내다가 사기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며 “금융을 조금 안다고 자만하다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반면 40대는 전체 피해자의 9.2%에 불과했다.
경찰의 엄벌 의지에도 유사수신 사기는 줄지 않고 있다. 미흡한 처벌로 인해 ‘치고 빠지기식’ 범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7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불법으로 모은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의 이철 대표와 주요 임원들이 모두 구속됐는데도 하위 조직들은 계속 분리해 유사수신 행위를 했다.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네이버카페(100-TECH)를 통해 ‘2개월 내에 10%의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투자자 1000여명을 모집한 일당도 알고보니 VIK의 하위 조직이었다.
◆갈수록 대담, 치밀
사기 수법은 대담하고 치밀하다. 대대적인 온·오프라인 광고는 물론 고급호텔 연회장에서 투자설명회를 열기도 한다. 숨지 않고 공개적으로 ‘낚시’하는 셈이다.
투자회사의 실체를 믿을 수 있게 하는 장치는 기본이다. 해외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등록할 뿐 아니라 홈페이지의 인터넷프로토콜(IP) 주소를 해외에 두기도 한다. 홈페이지뿐 아니라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등도 만들어 공신력을 높인다.
FX 마진거래(외환차익거래) 등 파생상품이 자주 등장한다. IDS홀딩스라는 유사수신 업체는 “FX 마진거래 사업에 투자하면 매달 1~10%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최근까지 1만2000여명으로부터 1조960억원을 투자받아 사기 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1일 필리핀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피살된 한국인 3명도 IDS홀딩스의 사업 모델을 모방했다는 게 이들을 수사한 한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서울 역삼동에 J투자업체를 차리고 올 8월까지 300여명한테서 150여억원을 가로챈 뒤 해외로 도주했다가 변을 당했다.
가짜 가상 화폐로 사기 친 일당도 있었다. 이들은 ‘액면가 10원짜리 가상 화폐에 투자하면 연말까지 10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허황된 수익률로 1500여명(178억원)을 속였다. 보험설계사를 조력자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지난달 고배당 전환사채(CB) 등 금융상품을 판매한다고 속여 피해자 4721명으로부터 1350억원 상당의 금액을 투자받은 혐의로 보험설계사들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 유사수신
정부의 인허가를 받지 않은 금융회사가 원금을 보장한다거나 일정 수준의 수익을 약속하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끌어모으는 행위. 보통 시중 금리를 크게 웃도는 수익률을 보장한다면서 사람들의 욕심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의 원금으로 다른 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이 많다.
박상용/심은지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지난해 말 송년회에 갔다가 혹하는 얘기를 들었다. 군대 선임이던 김모씨는 “글로벌 투자은행 N사가 한국에 인터넷은행을 세우려고 하는데 투자하면 3개월마다 연 10% 이상의 금리를 준다”고 귀띔했다. 안 그래도 돈을 굴릴 곳이 없어 고민하던 터였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그는 3년 전 중소기업에 가까스로 취업해 약 1000만원을 모았다.
처음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대목에서 의심했다. 하지만 구체적이었다. 호텔에서 열리는 투자설명회에 참석하고선 의구심이 점점 풀렸다. 이들은 “한국에 설립할 인터넷은행은 단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KT나 카카오와 달리 실질적인 재테크 투자자를 모집한다”며 “15개월 동안 복리로 128%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N사의 한국지사가 서울 여의도 IFC 빌딩에 입주해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무엇보다 김 선임이 “이미 3개월 전 투자해 10% 수익을 얻었다”면서 통장 내역을 보여줬다. 결국 그간 모은 1000만원을 투자했다가 올해 초 모두 날렸다. 인터넷은행은 실체가 없었다. 믿었던 선임은 ‘중간 관리책’이었다.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박씨는 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버렸다.
◆금융 좀 아는 30대도 낚인다
2012년 이후 유사수신 사범은 매년 1000명 안팎이 잡히고 있다. 올해는 9월 말까지 1404명이 유사수신 혐의로 검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712명)의 두 배다.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을 미끼로 하는 유사수신 범죄는 올 들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유사수신 사기범들은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주무대로 활동한다. 금융 지식이 없는 노인들은 물론이고 금융을 조금 안다고 하는 30대들도 이들의 수법에 당하고 있다.
지난 6~7월 경찰청의 불법사금융 특별단속 결과를 보면 유사수신 피해자의 5명 중 1명꼴로 30대(21.5%)였다. 50대(23.1%) 못지않게 피해자가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50대는 은퇴자금을 마련하려다가 당하는 반면 30대는 결혼자금을 모으려고 욕심을 내다가 사기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며 “금융을 조금 안다고 자만하다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반면 40대는 전체 피해자의 9.2%에 불과했다.
경찰의 엄벌 의지에도 유사수신 사기는 줄지 않고 있다. 미흡한 처벌로 인해 ‘치고 빠지기식’ 범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7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불법으로 모은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의 이철 대표와 주요 임원들이 모두 구속됐는데도 하위 조직들은 계속 분리해 유사수신 행위를 했다.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네이버카페(100-TECH)를 통해 ‘2개월 내에 10%의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투자자 1000여명을 모집한 일당도 알고보니 VIK의 하위 조직이었다.
◆갈수록 대담, 치밀
사기 수법은 대담하고 치밀하다. 대대적인 온·오프라인 광고는 물론 고급호텔 연회장에서 투자설명회를 열기도 한다. 숨지 않고 공개적으로 ‘낚시’하는 셈이다.
투자회사의 실체를 믿을 수 있게 하는 장치는 기본이다. 해외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등록할 뿐 아니라 홈페이지의 인터넷프로토콜(IP) 주소를 해외에 두기도 한다. 홈페이지뿐 아니라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등도 만들어 공신력을 높인다.
FX 마진거래(외환차익거래) 등 파생상품이 자주 등장한다. IDS홀딩스라는 유사수신 업체는 “FX 마진거래 사업에 투자하면 매달 1~10%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최근까지 1만2000여명으로부터 1조960억원을 투자받아 사기 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1일 필리핀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피살된 한국인 3명도 IDS홀딩스의 사업 모델을 모방했다는 게 이들을 수사한 한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서울 역삼동에 J투자업체를 차리고 올 8월까지 300여명한테서 150여억원을 가로챈 뒤 해외로 도주했다가 변을 당했다.
가짜 가상 화폐로 사기 친 일당도 있었다. 이들은 ‘액면가 10원짜리 가상 화폐에 투자하면 연말까지 10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허황된 수익률로 1500여명(178억원)을 속였다. 보험설계사를 조력자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지난달 고배당 전환사채(CB) 등 금융상품을 판매한다고 속여 피해자 4721명으로부터 1350억원 상당의 금액을 투자받은 혐의로 보험설계사들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 유사수신
정부의 인허가를 받지 않은 금융회사가 원금을 보장한다거나 일정 수준의 수익을 약속하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끌어모으는 행위. 보통 시중 금리를 크게 웃도는 수익률을 보장한다면서 사람들의 욕심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의 원금으로 다른 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이 많다.
박상용/심은지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