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회의장 향하는 박 대통령 >  2017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24일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왼쪽)의 안내를 받아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본회의장 향하는 박 대통령 > 2017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24일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왼쪽)의 안내를 받아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이 ‘승부사’답게 개헌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박 대통령은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지금 개헌을 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4월26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며 개헌 논의에 부정적이었다. 박 대통령 스스로 ‘국정 블랙홀’이라는 개헌카드를 꺼낸 것이다. 지지율 급락 등으로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심화될 위기에 처한 박 대통령이 임기 말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반전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 개헌 전격 제안] '국정 블랙홀' 열어젖힌 박 대통령…임기내 개헌 승부수 통할까
◆청와대 "오래전부터 개헌 준비"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갑자기 개헌카드를 꺼낸 게 아니라고 했다. 김재원 정무수석은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개헌에 대해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며 “(참모들 사이에서)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개헌 추진을 공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박 대통령의 개헌 추진 결심 시기에 대해 “최종적인 보고서를 추석 연휴 전에 드렸고, 연휴 마지막 무렵에 대통령이 개헌 준비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취임 첫해부터 “개헌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지금은 민생을 챙기는 게 먼저”라고 논의를 차단했다. 그 이후에도 서너 차례 공개 석상에서 ‘시기상조’라는 기존 견해를 유지해 왔다. 박 대통령도 이날 “엄중한 안보·경제 상황과 시급한 민생 현안 과제들에 집중하기 위해 헌법 개정 논의를 미뤄 왔고, 개헌 논의 자체를 자제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고 설명했다.

◆“단임제 구조적 한계”

박 대통령이 ‘개헌 블랙홀’을 앞세우다 전격 선회한 데는 크게 세 가지 배경이 작용했다는 게 정치권 분석이다. 우선 정치권이 5년 단위의 ‘대선 시계’에 맞춰 이전투구의 정쟁을 반복하는 대통령 단임제의 구조적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 정치는 대통령 선거를 치른 다음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체제로 인해 정권 창출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다 직접적인 배경은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 및 최순실 씨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여권 내 우려가 작용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30% 선이 무너지고 역대 최저치인 26%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카드는 박 대통령의 말 그대로 모든 걸 한순간에 덮을 수 있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우 수석 및 최씨 의혹까지 덮고,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까지 개헌정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레임덕 극복…정국 주도권 유지

야권은 “측근 비리 돌파를 위한 국면전환용”이라고 경계감을 드러냈다. 김 수석은 “현안이 있다고 해도 국가 장래를 결정하는 일을 미룰 수는 없는 것”이라며 “개헌을 제안한다고 검찰 수사가 달라질 수 없으며 그런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개헌카드를 던짐으로써 임기 말까지 정국 주도권을 쥘 수도 있다. “임기 내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며 개헌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치권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박 대통령이 직접 정치권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라고 김 수석이 전했다. 하지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권은 “대통령은 이번 개헌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