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지대추구 사회, 우리가 키워 온 괴물
‘대통령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 농단이 사실로 드러나 온 나라가 뒤집어진 지난 25일, 한국은행은 경제 성장률이 네 분기째 0%대(3분기 성장률 0.7%)에 머물렀다고 발표했다. 활발했던 건설 투자와 추가경정예산 효과를 제외하면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진단도 내놨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양대(兩大) 제조업체부터가 ‘고난의 행군’을 예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쇼크’에 빠져 있고, 현대자동차는 5년 연속 수익성이 뒷걸음질하자 ‘임원 급여 10% 반납’과 함께 위기관리 경영에 들어갔다.

내수시장도 심상치 않다. 중국 정부가 “한국행 관광객을 20% 줄이라”는 지시를 자국 여행사들에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호텔 유통 등 내수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업종과 기업 규모를 따질 것 없이 경제 전반에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엊그제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20년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 이후의 성적표를 짚어보는 일은 씁쓸하다. 경제 규모와 수출액이 두 배, 여섯 배 늘어나면서 국내총생산(GDP) 세계 9위, 수출은 6위의 대국이 됐다. 외형이 화려하다. 속은 딴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년째 2만달러대(지난해 2만7931달러)에 갇히면서 38개 회원국 평균(3만2411달러, 2013년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을 맴돌고 있다. OECD 회원국 내 소득 순위는 20년 전 24위에서 올해 23위로 한 계단 오르는 데 그쳤다. 시간당 노동생산성(2013년 기준)이 29.9달러로 38개 회원국 평균(40.5달러)의 70% 수준에 불과한 결과다.

삶의 질은 더 초라하다. OECD가 각국별 주거와 소득, 직업, 건강 등을 종합해 산출한 ‘더 나은 삶 지수(BLI)’ 순위가 올해 28위를 기록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인식지수는 지난해 55점(100점 만점)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27위에 머물렀다. “잘 살아보세”라던 의욕은 어디로 가고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쯤 되면 “OECD 가입은 한국에 축복이 아니라 내리막길의 신호탄이었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무엇이 한국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땀과 눈물의 가치 대신에 정치적 지대(地代)추구에 내몰리게 한 ‘정치의 타락’을 원인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 “우리도 선진국 클럽의 일원이 됐으니 이제 각자의 몫을 챙길 때가 됐다”는 식의 지대추구 경쟁을 분출시킨 입법 만능주의가 본격 등장한 게 이즈음이어서다.

기업들은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장에서 싸우는데 ‘약자 보호’ 프레임을 내세워 특정 산업과 큰 규모의 기업을 시장경쟁으로부터 차단하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억압하고 재산권을 침해하는 입법을 통해 경제활동 의지를 꺾는 풍토를 확산시키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활력을 가로막은 규제의 정치는 ‘힘’을 거머쥔 소수의 정치인에게 막대한 ‘지대’를 안겨줬다. 그 단맛에 젖은 정치권은 ‘표밭’ 이익집단들에 지대를 나눠주며 타락을 부추겼다. 국가에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극한 대립과 투쟁의 ‘진영 전쟁’을 벌이게 했고, 시장경제를 왜곡시켜 땀의 가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지금 한국을 들쑤시고 있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행태는 천박한 ‘지대추구 사회’를 보여주는 부끄럽고 참담한 단면이다.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켰더니 내가 이만큼 받고 있는 거잖아”라고 한 그의 언동이 공개되면서 한국 사회의 분노와 좌절감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땀 흘린 노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의 결과로 나타난 것을 깨끗하게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사회로 나라를 재구축하는 일은 온전히 정치 리더십의 몫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의욕을 꺾는 괴물을 키워온 지대추구 경쟁의 지난날을 통절히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집단무기력증을 치유해나가야 한다. “리더는 위기를 불러온 실수를 인정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일랜드를 금융위기의 재앙으로부터 되살려낸 브라이언 카우언 전 총리가 며칠 전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이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