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업들이 4550억유로(약 562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고도 경기가 불확실하다며 투자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4550억유로는 금융권을 제외한 독일 산업계 전체가 지난 7년간 사용했던 투자금보다 많은 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중앙은행 자료를 토대로 “독일 회사들이 예금 등을 포함해 모두 4550억유로의 현금을 깔고앉아 있다”며 “투자를 망설이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독일 국가경쟁력 저하는 물론 유럽 경제 성장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기업인들이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는 글로벌 경제전망이 나쁘고 규제환경도 불확실한데다 지구촌 정치리스크도 크다는 점이다. 독일 대표기업 가운데 하나인 지멘스의 조 케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대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내년까지는 아주 조심스럽게 사업을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WSJ는 “저금리 덕분에 자금을 빌리기도 쉽고 실업률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경기가 나쁘지 않은데도 독일 업계가 보유자금을 늘리는데만 매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기업들은 자국내 투자에 더욱 인색하다. WSJ가 독일 대기업 11곳을 조사한 결과 5곳은 올해와 내년에 투자를 늘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5곳은 투자를 더 하더라도 해외에서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나머지 1곳은 디젤엔진 연비 스캔들이 불거진 폭스바겐으로 기존 투자계획까지 철회하겠다고 나섰다. 인구감소와 노령화 때문에 독일에 대한 투자매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디르크 슈마허 골드만삭스 독일지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은행으로부터 자금줄이 갑자기 막히거나 자본시장 접근성이 떨어질 것을 대비한 기업들의 방어심리도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미카엘 하이제 알리안츠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총선거에서 기업투자가 핵심 이슈가 돼야 한다”면서도 “불행히도 투자활성화를 위한 정치권의 관심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종서 기자/이상홍 인턴기자(UC버클리 3년)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