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천지에 나 하나만 남아…" 저항시인 이육사도 외로웠다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3월 어느 날.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일곱 살 아들에게 편지를 띄운다. “아직도 문소리가 날 때마다 혹시 네가 들어오는가 싶어 고개를 돌린다. (중략) 하지만 아침 상머리에 네가 없음을 알고 아빠는 눈물이 쏟아진다.”

한 청년은 짝사랑하는 여성에게 애타는 마음을 담아 이런 편지를 보낸다.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중략) 이런 말 하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주었습니다.”

앞의 편지는 춘원 이광수(1892~1950)가 죽은 아들 봉근에게, 뒤의 편지는 시인 이상(1910~1937)이 소설가 최정희에게 쓴 것이다.

《사랑을 쓰다, 그리다, 그리워하다》는 국내 유명 문인들이 가족, 친구, 애인 등에게 쓴 편지를 모은 책이다. 김동인 김영랑 김유정 노천명 박인환 이육사 이효석 등 근·현대 문학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문인 14명의 편지 44편이 실렸다.

작가들이 차마 작품에는 쓰지 못한 내밀한 가족사와 개인사가 담겨 있다. 특히 이상의 연애편지는 ‘정희’라는 여인이 보낸 편지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상의 고백체 단편소설 ‘종생기’와도 관련이 있어 문학사적으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편지를 통해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이육사는 경주 옥룡암에 머물며 호형호제한 신석초 시인에게 편지를 보내 외롭다고 푸념한다. 일제를 상대로 날선 언어를 뱉어낸 저항 시인의 강직한 면모는 간데없다. “나는 지금 이 넓은 천지에 진실로 나 하나만 남아 있는 것처럼 외롭기 그지없다는 것을 형은 짐작하리다. (중략) 혹 여름 피서라도 가서 복약(服藥·몸이 안 좋아 요양함)이라도 하려면 이곳으로 오려무나. 생활비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한 것이 천년 전이나 같은 듯하다.”

가족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도 정겹다. 소설가 김동인(1900~1951)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내를 ‘안해’라고 썼다. 아내가 집안을 비추는 해와 같다는 뜻이다.

실린 편지의 20% 정도는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 못지않은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