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1월 초 충남 아산 온양온천에서 표준어 사정을 위한 첫 회의가 열렸다. 우리말 백년대계의 초석을 놓는 자리라 분위기는 엄숙했다. 회의 도중에 ‘강아지’와 ‘개새끼’가 맞붙었다. ‘개의 새끼’를 가리키는 두 말이 표준어 자리를 놓고 세 싸움을 벌였다. 뜻이 같으면 어느 하나를 표준어로 삼아야 했다. 사정위원 간에 갑론을박이 팽팽하자 다수결로 결정키로 했다.

“먼저 강아지부터 손을 드십시오.”(의장)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다음엔 개새끼 손 드세요.” 남은 사람 가운데 몇이 손을 들었다. 그런데 의장이 보기에 한 사람이 어느 쪽이었는지 좀 헷갈린 모양이었다. 의장이 다시 물었다. “이 선생은 강아지죠?” 이씨는 “아니오, 난 개새끼요!”라고 답했다. 순간 회의장엔 한바탕 폭소가 쏟아졌다. 애초부터 이상한 말들이 오갔으나 어휘 사정에 몰두하느라 모르고 있다가, 이씨의 대답에 비로소 상황을 깨달은 것이었다. 동아일보 1936년 8월4일자에 소개된 일화다.

조선어학회는 세 차례 독회를 거쳐 1936년 10월28일 ‘조선어표준말모음’을 내놓았다. 80년 전 오늘이다. 그에 앞서 1933년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했다. 이들이 모태가 돼 지금 쓰는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이 틀을 잡을 수 있었다. 일제가 우리말 탄압을 본격화하던 시절 나온, 민족의 얼이 담긴 정수였다. 표준어 사정 작업에는 최현배 이극로 이희승 양주동 선생 등 국어학자를 비롯해 백낙준 김활란 안재홍 유진오 선생 등 모두 72명의 각계 인사가 참여했다. 거국적으로 나서 우리말의 기틀을 잡은 셈이다.

강아지냐 ‘개새끼’냐의 논란은 강아지가 표준어로 채택돼 최종안으로 발표됐다. 이후 ‘개새끼’는 ‘개의 새끼’란 뜻을 버리고 단순히 욕으로 하는 말로 쓰임새가 굳어졌다. ‘개새끼’로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당시엔 말의 기준이 없어 같은 말을 사람마다 제각기 썼다. 하늘과 하날, 하눌이 두루 쓰이던 시절이라 이 중 하늘을 표준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지금 우리말은 다시 절제되지 않은 말들로 넘쳐난다. 외래어뿐 아니라 정체불명의 신조어들을 무조건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일상의 언어뿐만 아니라 공공언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곤란하다. 언어는 우리 정신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표준어 모음집을 발간하던 당시의 정신을 되새겨 볼 때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