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조건으로 정부가 제시한 ‘1조원 규모의 농어촌상생기금’ 설치가 1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농어촌상생기금은 한·중 FTA로 이득을 보게 될 수출 기업들로부터 10년간 1조원을 걷어 피해 농어촌을 지원하자는 것으로, 일종의 무역이득공유제와 비슷하다.

정부가 기금 설치안을 제시할 당시부터 ‘기업 준조세 부담’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FTA로 이득을 보는 기업이 명확지 않은 데다 이득 규모를 따지기도 쉽지 않아 논란이 컸다. 하지만 지난 25일 ‘최순실 사태’ 와중에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는 관련 법안을 뒤늦게 통과시켰고, 이 과정에서 반(反)시장적으로 개악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조 한·중 FTA 농어촌상생기금…'미르재단 데자뷔'?
◆기금 출자 대상에서 ‘정부’ 빠져

지난해 11월30일 여·야·정 협의체는 한·중 FTA 타결에 따른 후속 조치로 1조원 규모의 농어촌상생기금을 조성키로 합의했다. 당초 야당과 농민단체 등은 조세 방식의 무역이득공유제를 요구했으나, 여·야·정은 산업계를 중심으로 1조원의 기금을 출연하자고 방향을 틀었다. 이에 산업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정책이며 또 하나의 준조세”라며 반발했다. 이후 여·야·정 합의로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과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개별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 2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개별 의원안을 검토한 뒤 대안으로 합쳐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대안엔 당초 상생기금 출연 대상에 포함됐던 정부가 빠졌다. 이 의원이 발의한 안은 상생기금 출자자를 ‘정부 또는 정부 외(外)의 자’로 정했지만, 이번에 통과된 안에는 ‘상생기금은 정부 외의 자의 출연금으로 조성한다’고 확정됐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개정안으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라며 “이에 따라 정부는 출연자 명단에서 제외되는 쪽으로 논의돼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통과된 대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형식적인 법률안 심사를 받은 뒤 다음에 열리는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야가 합의로 처리한 만큼 국회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것으로 국회 안팎에선 예상하고 있다.

◆수출 기업들 10년간 1조원 내야

이에 따라 기업들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당초엔 10년간 1조원을 정부를 포함한 민간단체에서 출자하면 됐으나, 정부가 빠지면서 민간의 부담이 그만큼 더 커지게 된 것이다.

상생기금은 현재 누가 출자할지, 어디에 얼마를 쓸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관리 운영자만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라고 법에 명시돼 있다. 다만 무역이득공유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한·중 FTA 타결로 이득을 보게 된다는 논리에 따라 수출기업과 농협 수협 등이 부담하는 큰 방향만 결정된 상태다. 이에 따라 농협 수협,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수출 대기업과 섬유업체 등 수출 중소기업이 기금을 출자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기부금 형태를 띨 것”이라고 했지만, 산업계 관계자들은 “미르재단 등과 같이 비자발적인 형태가 될 게 뻔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에 국회 농해수위를 통과한 개정안엔 FTA 타결에 따른 정부 재정 투입 규모도 크게 증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FTA 타결에 따른 피해보전직불금을 산출하는 지급단가를 기준가격과 해당연도 평균가액의 차액의 90%로 규정하고 있는 기존 안을 개정안에선 95%로 높였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법안 통과에 따른 비용추계서를 보면, 개정안 통과로 2017년부터 10년간 정부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재정은 2776억1100만원에 달한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