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靑서 文 민정·시민사회수석, 金 정책실장으로 호흡
金, 2012년 대선서 김두관 지지…친노세력 비판 견지
文측 "인물 얘기할 단계 아니다…임명 절차·방식이 문제"


한 때의 동지가 적으로 마주섰다.

참여정부 시기 노무현 대통령의 우산 아래에서 함께 정책을 논의하며 국정을 이끌었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얄궂은 운명에 처한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파문을 수습하기 위한 정국돌파용으로 김병준 카드를 내밀면서 두 사람이 정치적 대척점에 서게 된 것이다.

야권의 유력 대권후보인 문 전 대표가 최순실 파문을 고리로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하며 박 대통령에게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넘기라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던 와중에 박 대통령이 아무런 상의 없이 참여정부 인사인 김 내정자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최순실 파문으로 벼랑 끝에 몰린 여권을 몰아붙이는 동시에 국정 정상화 해법을 내놔야 하는 문 전 대표로서는 '박근혜 내각 사령탑'으로 이를 적극 수습하며 방어막 역할을 할 김 내정자와의 한판 싸움이 불가피해졌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핵심 참모를 지낸 동지였다.

변호사였던 문 전 대표는 2003년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거쳐 시민사회비서관과 두 번째 민정수석,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역임하며 노 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 친노(親盧) 멤버다.

김 내정자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정책자문단장으로 참여정부와 연을 맺은 뒤 대통령직인수위 정무분과 간사로 참여정부 밑그림을 그렸다.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근무가 겹친 시기는 2004∼2006년이다.

문 전 대표는 시민사회수석과 민정수석으로, 김 내정자는 대통령 정책실장으로 호흡을 맞추며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문 전 대표가 정무적으로 노 대통령을 도왔다면 김 내정자는 핵심 정책브레인 역할을 했다.

2005년 2월 한 언론의 정치부 기자를 상대로 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문 전 대표가 1위, 김 내정자가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참여정부가 막을 내린 후인 2009년 범친노계 모임인 '시민주권'에도 두 사람은 운영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의 길은 확연히 엇갈렸다.

문 전 대표가 친노세력을 결집하며 대권가도를 달린 반면 김 내정자는 이 그룹에서 이탈했다.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석패한 2012년 대선을 앞둔 당내 경선에서 김 내정자는 문 전 대표가 아닌 또 다른 친노인사인 김두관 경남지사를 지지했다.

김 내정자는 이후 친노세력에 대한 쓴소리를 적지 않게 냈다.

2013년 8월엔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특강을 하는 변신의 모습을 보였고, 올해 4·13 총선에서 민주당의 출마 권유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했다.

이런 악연에도 문 전 대표 측은 "인물에 관해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조심스레 접근했다.

김 내정자 개인 캐릭터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최순실 국면 타개를 위해 독단적으로 총리를 임명한 절차와 방식이 문제라는 데 방점을 뒀다.

문 전 대표 측은 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람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국면을 수습해가는 방식의 문제"라며 "누가 되든지 개각으로 할 문제가 아니다.

국면호도용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스스로 TK(대구·경북) 대표주자라고 생각하면서 독자 행보를 보인 분으로, 우리와 관계를 맺어오지 않았다"며 "지난 대선 경선 때 TK 대표주자로 경선 출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 전 대표가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인사와 대척점에 선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참여정부 때 외교통상부 장관과 청와대 안보실장을 했던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과 최근 회고록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벌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는 내년 대선에서 맞닥뜨릴 공산이 작지 않다.

반 사무총장은 참여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세계의 대통령'인 유엔 사무총장까지 올랐다.

한편, 참여정부 대통령직인수위 경제분과위원부터 국민경제비서관까지 지낸 정태인 정의당 정의구현정책단장은 페이스북에 "청와대에서 김병준과 수도 없는 회의를 했지만 그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에 없다.

아이디어도 이론도 없기 때문"이라며 "영민한 대통령 밑에서도 한 게 없는 사람이 지금 대통령 밑에서 과연 무엇을 할까.

책임총리?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글을 남겼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