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식물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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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식물은 지구 생명체의 99.7%를 차지한다. 인간과 동물은 0.3%에 불과하다. 생성 시기도 식물이 훨씬 빠르다. 식물의 감각은 인간의 오감을 넘어선다고 한다. 행동 방식도 다양하다. 기온이나 습도, 전기장, 소리의 진동,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 같은 외부 요소를 섬세하게 감지해서 뿌리 뻗을 곳을 정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의 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뿌리를 뻗는 것은 당장의 수요보다 미래에 발견될지 모르는 영양소를 미리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몸짓을 통한 의사소통은 더욱 놀랍다. 친족과 같은 공간에서 자랄 때에는 지하의 뿌리 경쟁을 자제하고 지상의 생장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한다. 소나무 등은 이웃한 나무가 아무리 가까이에 있더라도 서로의 광합성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이른바 ‘수관(樹冠) 기피’의 지혜다. 수많은 꽃을 피우는 콩과식물 루핀은 벌이 한 번 수정한 꽃잎의 색깔을 파랗게 바꿔 다른 벌의 헛수고를 덜어준다.
식물에 ‘지능’이 있다는 믿음은 기원전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부터 근대의 린네와 페히너, 20세기 찬드라 보즈까지 이어져 왔다. 다윈은 ‘식물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진보한 생물체’라며 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구조가 뿌리에 존재한다는 ‘루트 브레인(root-brain)’ 가설을 제시했다. 뿌리가 다른 부분의 운동을 지휘하는 뇌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의 비밀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제 서울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여러 면에서 흥미를 끈다. 땅 속에서 빛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식물 뿌리가 햇빛을 전달받고 생물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을 처음 밝혀낸 것이다. 잎에서 흡수한 빛을 관다발로 전해 받은 뿌리가 이를 분석해 잎과 줄기 등의 생장에 필요한 정보로 내보낸다는 게 증명됐다. 식물의 뿌리가 컨트롤 허브(정보 조절 중심) 즉, 사람의 ‘뇌’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뿌리의 빛 인지 능력을 조절해 토양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특정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농작물 신품종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구가 발전해갈 것이라고 한다. ‘루트 브레인’ 가설의 타당성 검증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고 보니 식량부터 의약품, 에너지, 설비 등 우리가 식물에 의존하지 않는 게 거의 없다. 식물은 인간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식물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생명은 오묘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몸짓을 통한 의사소통은 더욱 놀랍다. 친족과 같은 공간에서 자랄 때에는 지하의 뿌리 경쟁을 자제하고 지상의 생장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한다. 소나무 등은 이웃한 나무가 아무리 가까이에 있더라도 서로의 광합성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이른바 ‘수관(樹冠) 기피’의 지혜다. 수많은 꽃을 피우는 콩과식물 루핀은 벌이 한 번 수정한 꽃잎의 색깔을 파랗게 바꿔 다른 벌의 헛수고를 덜어준다.
식물에 ‘지능’이 있다는 믿음은 기원전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부터 근대의 린네와 페히너, 20세기 찬드라 보즈까지 이어져 왔다. 다윈은 ‘식물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진보한 생물체’라며 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구조가 뿌리에 존재한다는 ‘루트 브레인(root-brain)’ 가설을 제시했다. 뿌리가 다른 부분의 운동을 지휘하는 뇌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의 비밀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제 서울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여러 면에서 흥미를 끈다. 땅 속에서 빛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식물 뿌리가 햇빛을 전달받고 생물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을 처음 밝혀낸 것이다. 잎에서 흡수한 빛을 관다발로 전해 받은 뿌리가 이를 분석해 잎과 줄기 등의 생장에 필요한 정보로 내보낸다는 게 증명됐다. 식물의 뿌리가 컨트롤 허브(정보 조절 중심) 즉, 사람의 ‘뇌’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뿌리의 빛 인지 능력을 조절해 토양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특정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농작물 신품종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구가 발전해갈 것이라고 한다. ‘루트 브레인’ 가설의 타당성 검증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고 보니 식량부터 의약품, 에너지, 설비 등 우리가 식물에 의존하지 않는 게 거의 없다. 식물은 인간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식물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생명은 오묘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