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청문회 거부에 임명 강행도 어려워 '컨트롤타워 공백' 심화할 듯
당분간 유일호 부총리 체제…'식물 경제팀' 가능성


박근혜 대통령이 2일 개각을 통해 경제부총리 교체 뜻을 밝혔지만 야당이 청문회 거부로 맞서면서 연말 경제정책 추진에 험로가 예상된다.

청문회 성사 여부 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임종룡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를 과연 언제 임명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유일호 현 부총리가 당분간 경제수장 자리에서 경제현안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유 부총리 경질이 기정사실로 된 데다 야당의 반발로 정책 추진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여 '식물 경제팀'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 현오석 33일, 최경환 27일, 유일호 21일…임종룡은?

박근혜 정부 4기 경제팀을 이끌 임종룡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앞에는 취임이라는 첫 단계부터 험로가 예고돼 있다.

이번 개각에 대해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를 덮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만 보면 부총리 내정 후 취임까지 기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첫 경제수장인 현오석 전 부총리는 2013년 2월 17일 내정돼 33일 후인 그 다음 달 22일이 돼서야 취임했다.

이후 최경환 전 부총리는 27일, 유일호 현 부총리는 21일로 내정부터 취임까지 기간이 단축됐다.

그러나 야당이 칼을 갈고 있는 상황에서 임 내정자의 취임까지 기간은 이전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청문회 절차가 더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저희로선 알 수 없고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 "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빨리 제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사 청문 요청서를 제출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전망이다.

임 내정자가 금융위원장 취임 당시 이미 청문회를 거쳤기 때문에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작업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가급적 이번주 금요일까지 국회에 인사 청문 요청서를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인사 청문 요청서를 받아 청문회 일정을 정하는데, 야 3당이 개각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터라 현재로썬 이 단계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다.

어렵사리 청문회 일정이 잡힌다고 한들 인사청문회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임 내정자는 지난해 금융위원장 청문회 당시 위장전입·다운계약서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임 내정자는 유감을 표명하며 의혹을 모두 시인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임 내정자가 도덕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30여년간 금융·경제 분야 경력이 인정된다며 청문회 다음날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 분위기는 그때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임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정쟁을 부채질한다는 부담과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한 부총리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는 점 때문에 실제로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임 내정자는 내정 직후인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를 시작으로 부총리직 수행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임 내정자는 당분간 금융위원회 집무실에서 기재부 국·과장들에게 현안 보고를 받으며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계획이다.

◇ 경질된 유일호가 굵직한 경제현안 마무리해야…혼선 불가피

이런 점들 때문에 개각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연말까지 유 부총리 체제를 유지하면서 각종 경제현안에 대응 할 수밖에 없다.

유 부총리가 교체 결정이 난 후에도 주요 정책 집행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어서 정책 '컨트롤타워' 공백이 심화하는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게다가 임 내정자의 청문회 통과 여부나 임명 시점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정책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고, 조직이 어수선한 가운데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경우 순발력 있는 대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당장 다음날인 3일 열리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는 강남 재건축발 부동산 경기 과열 현상에 대한 선별적·단계적 대응 위주의 대책이 발표될 예정이다.

대책 효과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후속조치가 필요할 전망이다.

또 오는 8일에는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만큼 결과에 따라 대외경제정책을 수정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밖에 연말로 임박한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과 중국의 부동산 시장,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대외 불안요인도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내달 중으로 발표할 내년도 경제정책방향도 문제다.

기재부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 마지막해 경제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구조조정, 수출부진, 가계부채 증가 등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경제정책 방향 설정 작업에 새 경제수장 내정자가 참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개각 과정에서 국무총리실이 어수선한 모습을 보인 것도 유 부총리 체제에는 잠재적인 불안요인이다.

이날 황교안 국무총리는 개각 발표 직후 오후 1시에 이임식을 하겠다며 일정을 통지했다가 국회에서 "정부가 국정 공백을 조장한다"는 질타가 나오자 이를 번복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해 임명되기 전 총리직 공석 사태가 발생하면 유 부총리가 직무대행을 맡아야만 하는 만큼,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가뜩이나 어수선한 상황에서 혼란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연합뉴스) 김동호 김수현 기자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