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453년 비잔티움 최후의 날…두 군주의 사생결단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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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504쪽│2만8000원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504쪽│2만8000원
“패자(敗者)의 역사는 기록되지 못한다.” 역사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격언이다. 대부분 역사의 붓은 이긴 자의 손에 쥐어지기 때문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사진)은 지난달 말 출간한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에서 이 같은 ‘전가의 보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책은 2012년 출간한 《술탄과 황제》의 전면 개정판이다. 지난해까지 38쇄를 찍은 스테디셀러를 ‘뼈대만 남기고 다 바꿨다’고 할 만큼 다시 썼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국지적·미시적인 수정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며 “인체로 치면 피부 이식뿐만 아니라 성형과 정형도 동시에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박진감과 정확성이다. 초판 3장에서 자신이 쓴 정복 전쟁 해설 부분을 빼는 대신 균형을 지키기 위해 서구 측 기록뿐만 아니라 터키 쪽 역사 기록도 더욱 많이 살펴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각종 그림과 지도, 연표 등 다양한 부록을 실었고, 독자의 편의를 위해 부록의 QR코드도 별도로 마련했다. QR코드는 독자들을 1453년 당시의 현장으로 이끄는 ‘타임머신’이다.
저자는 섣불리 심판자나 변사로 나서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이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관찰자일 뿐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에서 공격자와 방어자로 맞섰던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티움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 책에서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각각 군주로서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온몸을 던진 인물들일 뿐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구분도 없다.
메흐메드 2세와 콘스탄티누스 11세는 각각 공격과 항전을 독려하는 연설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 리더십을 드러낸다. 메흐메드 2세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들기 위해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그대들 앞에는 현생의 전리품과 내세의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며 “그러나 만약 탈영을 시도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새의 날개를 가졌다 할지라도 내 응징의 칼날보다는 빠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상과 헌신을 추구한다. 그는 신하들에게 “신앙과 조국, 하느님의 대리자인 황제, 가족과 벗들을 위해 싸운다”며 “다시 한번 신앙의 동지로서, 의기투합한 형제로서 여러분의 의무를 다해주길 부탁한다”고 명한다.
책의 분량은 많지만 구성은 단순하다. 프롤로그와 1부, 2부, 에필로그가 전부다. 하지만 단출한 짜임 속에 내용은 알차고도 체계적으로 들어가 있다. 1부는 1453년 5월29일부터 1453년 6월1일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난 일들을 세밀히 묘사하며 옛 제국의 멸망과 동시에 이뤄진 새 제국의 탄생을 논한다.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정복 이후 어떻게 이 도시를 오스만 제국의 중심으로 변모시켜 나가는지, 정적들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등을 중심으로 논한다.
압권은 2부 ‘황제의 일기와 술탄의 비망록’이다. 이 부분은 저자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창조한 팩션이다.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성을 강력히 수비하며 황제로서의 책임과 인간적 불안을 처절히 묘사한 일기,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바다와 산을 넘어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한 21세의 젊은 술탄 메흐메드 2세의 비망록을 한 편씩 나란히 배치했다.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남긴 일기에, 메흐메드 2세는 비망록으로 답했다.
저자는 전쟁의 처절한 현장에서 부딪친 두 군주의 고뇌를 관찰자적 시각을 지키며 담담하고도 냉정하게 전한다. 그는 “이 글은 동서 문명의 교차로인 이스탄불에서 종군기자가 된 심경으로 써 내려간 54일간의 격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전쟁의 주역이었던 오스만의 술탄과 비잔티움의 황제, 두 제국의 리더십에 대한 치열한 탐구”라고 밝혔다.
저자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을 더해 만든 합성어 ‘이스탄티노플’에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는 “이스탄불의 전신은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라며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내가 개념 짓고 명명한 이스탄티노플”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전쟁도, 걸출한 인물도, 문명도 멀리 바라보면 기나긴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일부에 불과한 사실과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역사를 창조하고, 무너뜨리고, 또다시 세운다는 역설을 함께 알려준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문화는 오스만제국과 유럽에 매우 큰 영향을 줬다.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과 오스만 제국의 중흥은 중세가 끝나고 근세가 시작되는 계기의 하나였다. 역사에서 영원불멸한 존재는 없다. 책 표지에 꽃향기를 맡는 모습의 메흐메드 2세와 아마 현존 유일일지도 모를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초상이 나란히 그려져 있는 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이 책은 2012년 출간한 《술탄과 황제》의 전면 개정판이다. 지난해까지 38쇄를 찍은 스테디셀러를 ‘뼈대만 남기고 다 바꿨다’고 할 만큼 다시 썼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국지적·미시적인 수정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며 “인체로 치면 피부 이식뿐만 아니라 성형과 정형도 동시에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박진감과 정확성이다. 초판 3장에서 자신이 쓴 정복 전쟁 해설 부분을 빼는 대신 균형을 지키기 위해 서구 측 기록뿐만 아니라 터키 쪽 역사 기록도 더욱 많이 살펴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각종 그림과 지도, 연표 등 다양한 부록을 실었고, 독자의 편의를 위해 부록의 QR코드도 별도로 마련했다. QR코드는 독자들을 1453년 당시의 현장으로 이끄는 ‘타임머신’이다.
저자는 섣불리 심판자나 변사로 나서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이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관찰자일 뿐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에서 공격자와 방어자로 맞섰던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티움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 책에서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각각 군주로서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온몸을 던진 인물들일 뿐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구분도 없다.
메흐메드 2세와 콘스탄티누스 11세는 각각 공격과 항전을 독려하는 연설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 리더십을 드러낸다. 메흐메드 2세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들기 위해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그대들 앞에는 현생의 전리품과 내세의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며 “그러나 만약 탈영을 시도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새의 날개를 가졌다 할지라도 내 응징의 칼날보다는 빠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상과 헌신을 추구한다. 그는 신하들에게 “신앙과 조국, 하느님의 대리자인 황제, 가족과 벗들을 위해 싸운다”며 “다시 한번 신앙의 동지로서, 의기투합한 형제로서 여러분의 의무를 다해주길 부탁한다”고 명한다.
책의 분량은 많지만 구성은 단순하다. 프롤로그와 1부, 2부, 에필로그가 전부다. 하지만 단출한 짜임 속에 내용은 알차고도 체계적으로 들어가 있다. 1부는 1453년 5월29일부터 1453년 6월1일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난 일들을 세밀히 묘사하며 옛 제국의 멸망과 동시에 이뤄진 새 제국의 탄생을 논한다.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정복 이후 어떻게 이 도시를 오스만 제국의 중심으로 변모시켜 나가는지, 정적들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등을 중심으로 논한다.
압권은 2부 ‘황제의 일기와 술탄의 비망록’이다. 이 부분은 저자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창조한 팩션이다.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성을 강력히 수비하며 황제로서의 책임과 인간적 불안을 처절히 묘사한 일기,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바다와 산을 넘어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한 21세의 젊은 술탄 메흐메드 2세의 비망록을 한 편씩 나란히 배치했다.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남긴 일기에, 메흐메드 2세는 비망록으로 답했다.
저자는 전쟁의 처절한 현장에서 부딪친 두 군주의 고뇌를 관찰자적 시각을 지키며 담담하고도 냉정하게 전한다. 그는 “이 글은 동서 문명의 교차로인 이스탄불에서 종군기자가 된 심경으로 써 내려간 54일간의 격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전쟁의 주역이었던 오스만의 술탄과 비잔티움의 황제, 두 제국의 리더십에 대한 치열한 탐구”라고 밝혔다.
저자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을 더해 만든 합성어 ‘이스탄티노플’에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는 “이스탄불의 전신은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라며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내가 개념 짓고 명명한 이스탄티노플”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전쟁도, 걸출한 인물도, 문명도 멀리 바라보면 기나긴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일부에 불과한 사실과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역사를 창조하고, 무너뜨리고, 또다시 세운다는 역설을 함께 알려준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문화는 오스만제국과 유럽에 매우 큰 영향을 줬다.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과 오스만 제국의 중흥은 중세가 끝나고 근세가 시작되는 계기의 하나였다. 역사에서 영원불멸한 존재는 없다. 책 표지에 꽃향기를 맡는 모습의 메흐메드 2세와 아마 현존 유일일지도 모를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초상이 나란히 그려져 있는 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