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국 수습에 나섰으나 야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강대강의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는 등의 입장을 밝히며 사과했지만 국정 운영 주도에 대한 의지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돼야만 한다. 정부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한다. 국민들이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이 요구한 책임총리제나 거국중립내각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가 전날 책임총리 역할에 의지를 나타낸 만큼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이를 보장해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책임총리제와 거국내각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김병준 총리 카드’를 밀고 가겠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가 내치를 맡고, 박 대통령은 외교·국방 등 외치에 주력하는 것을 국정 운영 모델로 상정하고 있다.

거국내각과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영수회담이 열리면 이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박 대통령이 견해를 밝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의 의견을 듣기 전에 박 대통령이 얘기를 먼저 꺼낼 성격이 아니라는 의미다. 거국내각을 꾸리면 주요 국정 현안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갈려 갈등을 빚으면서 국정 운영이 표류할 공산이 크다는 게 청와대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역시 야당과 시각차가 크다. 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이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 이를 계기로 꼬인 정국을 해소하는 단초를 만들겠다는 구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담화에 야당이 강경 태도를 나타내 정국 수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조건부 정권퇴진론을 들고 나왔다. 공을 다시 박 대통령에게 넘겼다. 청와대는 여야 대표회담을 통해 김병준 카드의 진정성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민주당은 그 카드를 접고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의지를 먼저 보여야 대화 테이블로 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의 인식과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한광옥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국정 일선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후퇴하라고 건의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새누리당이 정치 중립성이 보장된다면 별도 특검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고, 국민의당은 영수회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조만간 영수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주말 촛불시위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청와대와 여야 모두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민심의 향배를 보고 다음 수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와 야당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김병준 총리 카드’가 수포로 돌아가면 박 대통령이 탈당하고 거국내각을 전격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야당 주도의 탄핵과 박 대통령 스스로의 하야는 최후의 수단이다. 야당도 정치적 후폭풍을 우려해 당 차원에서 탄핵과 하야 주장을 공식화하기 어렵다. 대통령 탈당, 탄핵, 하야는 내년 대선판을 송두리째 뒤흔들 변수다. 박 대통령이 하야하면 60일 안에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대선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야당으로선 큰 부담이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