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1인 회사 창업…을의 판타지 보여드려요"
국내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영애씨)가 돌아왔다. 이번이 15번째 시즌이다. 지난달 31일 새 시즌 첫 회를 내보낸 영애씨는 케이블채널 tvN이 2007년 개국 첫해부터 10년간 총 253회가 전파를 탔다. 주인공 이영애(김현숙 분)의 일상을 따라가며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 이야기를 풀어왔다. 이 드라마의 한상재 PD(사진)를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에서 만났다. 이 드라마 8시즌 때 처음 제작에 참여해 12시즌부터 총연출을 맡고 있는 그에게 같은 사람의 이야기로 10년째 공감을 얻고 있는 비결을 물었다.

“공감과 환상을 동시에 주는 것. 이게 영애씨가 오랫동안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이유라고 봅니다. 영애씨는 연애와 결혼, 직장 생활에서 보통 사람들이 느껴온 감정을 솔직하게 보듬는 드라마예요. 모든 것이 현실적일 필요는 없는 드라마의 특성을 활용해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죠.”

주인공 이영애는 예쁘지도 않고, 뚱뚱하고 나이 많은 여자다. ‘산소 같은 여자’로 유명한 미녀 배우와 이름만 같다. 자기 능력이든, 집안이든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만년 ‘을(乙)’이다.

"이번엔 1인 회사 창업…을의 판타지 보여드려요"
그의 일상도 마냥 곱게 다듬어진 드라마가 아니다. 이영애가 13시즌까지 네 차례 옮겨다닌 회사는 모두 직원이 10명 남짓한 영세 사업장. 변덕투성이 사장은 외모 비하와 성희롱을 말버릇처럼 내뱉고, 상사는 갑질을 일삼는다. 여느 드라마처럼 ‘백마 탄 왕자’나 부자 친엄마가 영애씨의 삶엔 없다.

“이영애가 항상 답답하게 당하고만 사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성실하게 삶을 꾸리면서도 가끔은 ‘막돼먹은’ 성격대로 통쾌하게 행동하죠. 멋진 남자들은 이영애의 이런 시원시원한 매력에 빠져들어 구애하고요.”

한 PD는 “여러 미남과의 로맨스부터 ‘진상’ 상사와의 대거리까지, 이영애의 삶에선 판타지적인 요소가 빠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방영한 14시즌에선 수많은 직장인의 꿈을 대변했다. 희망퇴직을 권하며 사원들을 이간질하던 사장에게 이영애가 시원하게 분노를 토해내고 사표를 제출한 것. 이후 그는 1인 회사를 창업해 자기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많은 직장인이 ‘내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잖아요. 야근 중에 ‘다 때려치우고 카페를 해볼까’라며 상상도 하고요. 지금까지 직장 생활 장면에 공감해온 ‘을’들의 판타지를 14~15시즌에서 충족시키고 싶었습니다. 물론 너무 비현실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지는 않을 겁니다.”

극 중 29세로 처음 등장한 이영애는 올해 39세가 됐다. 이번 시즌에선 낙원사의 이승준(이승준 분), 새 등장인물 조동혁(조동혁 분)과 삼각 로맨스에 빠진다. 마흔을 앞두고 비혼과 1인가구에 대한 고민에도 빠진다. “다들 나이 앞자리가 바뀔 때 새삼 느끼는 고민과 마음가짐이 있잖아요. 인생의 과도기에 선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을 반영할 예정입니다.”

시즌마다 시청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영애의 결혼 여부다. 이영애가 한 남자에게 정착하지 않는 건 시청률을 유지하기 위해서일까. 농담 섞인 질문에 사뭇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작가 회의에서 항상 나오는 질문인데 10년을 끌어온 이야기여서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아졌어요. 자칫 ‘30대 여자 삶의 해답은 결국 결혼’이라는 메시지를 주게 될까봐 조심스럽거든요. 이번 시즌에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