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경제에 대한 경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기 비관론으로 돌아서는 등 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요 경제지표의 절반 이상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보다 나빠졌다. 미국 대통령 선거 등 대외 불안정성까지 커지고 있어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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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경제위기론] 경기지표 10개 중 6개, 외환위기 직전보다 더 나빠졌다
내수 둔화 우려한 KDI

KDI는 6일 ‘경제 동향 11월호’를 통해 전체 경기가 둔화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수출 부진을 내수가 상쇄했는데 내수마저 위축되고 있어서다. 근거는 관련 지표 악화다. 지난 9월 소매판매(소비)는 전월보다 4.5% 감소했다. 8월에 전월보다 2.0% 증가했다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9월 소비 부진은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리콜 타격이 컸다. 스마트폰이 포함된 ‘통신기기 및 컴퓨터’ 판매가 전달보다 11.6% 감소하며 소매판매를 0.8%포인트 끌어내렸다. 에어컨 등의 구매를 이끌었던 ‘폭염 효과’가 끝난 영향도 컸다. 가전제품 판매가 8월보다 12.6% 급감했다.

내수의 또 다른 축인 서비스업 생산도 9월에 전월보다 0.6% 감소했다. 갤럭시노트7의 대량 반품 사태와 해운업 구조조정 등으로 도소매(-1.8%)와 운수(-3.1%) 등이 줄어든 탓이 컸다.

김성태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경기가 곧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면 ‘둔화’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최순실 씨 관련 ‘비선 의혹’으로 앞으로 소비심리지표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달 101.9로 전월(101.7)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소비심리지표도 앞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폭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허약해진 경제 체질

내수 외에도 국내 주요 경제지표는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몇몇 경제지표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보다 나빠졌다. ‘한국 경제 위기론’이 다시 커지고 있는 이유다.

무엇보다 가계의 경제 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안 좋아졌다. 고용시장 악화로 가계소득 증가율은 1996년 12.0%에서 올해 2분기(4~6월) 0.9%로 떨어졌다. 청년층(만 15~29세) 실업률도 1996년 4.6%에서 올 상반기 10.3%로 치솟았다. 9월엔 9.4%로 낮아졌지만 9월 기준으론 역대 최고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용시장 위축은 내수 침체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경제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리는 가계부채는 지난 상반기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90.0%로 치솟았다. 2006년(52.7%)에 비해 10년 새 4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실물경제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2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2%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80.4%)보다 낮았다. 지난해 신용평가회사들이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기업은 159곳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71곳이 강등된 이후 최대치다. 기업정보 분석업체인 NICE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재무 정보를 공개한 전체 기업(1352개) 중 413개(30.5%)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6년 전인 2010년보다 130곳 늘었다.

낙관론은 정부만 유일

KDI마저 비관론으로 돌아서면서 경기 낙관론을 유지하는 곳은 정부가 유일하다. 정부는 여전히 연간 성장률 목표치 달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된 것도 경제 위기론이 섣부르다는 주장의 근거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각각 작년 12월과 지난 8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대외건전성도 개선됐다. 외환보유액은 1996년 332억달러에서 3751억달러(10월 기준)로 불어났다.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단기외채 문제도 해소됐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