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만나 ‘국회 추천 총리’를 제안하고 ‘총리의 내각 통할 권한’을 약속했지만 정치권 협의 과정에서 논란거리가 적지 않다.

가장 큰 쟁점은 대통령의 권한 이양 범위다.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서 손을 떼고 총리에게 권한을 주느냐다. 박 대통령이 정 의장에게 여야에서 추천한 사람을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온다. 헌법 86조 2항엔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돼 있다.

박 대통령의 ‘통할’ 발언은 헌법대로 총리의 역할을 존중하되 대통령으로서 국정 관여의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책임총리’와 ‘거국내각’을 따로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야당이 요구하는 2선 후퇴와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총리에게 모든 권한을 넘기고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의전 대통령’에 머물러야 한다는 게 야당 주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실질적으로’라는 발언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헌법 규정 이상으로 총리가 내각을 통할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보장한다는 취지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말씀하신 그대로 총리가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끌면서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이라며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또 “내각 구성 권한도 넘긴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사그라들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는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완전히 손을 뗀다고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외교·안보 분야까지 총리에게 통할하는 권한을 주는 것인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헌법 74조 1항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돼 있다. 선전포고, 계엄 선포, 긴급조치 등 비상사태 때 국가를 지휘하는 것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다.

총리는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요구권을 행사하고 경제·사회 관련부처의 내치(內治)를 통할하는 대신 대외적인 역할은 대통령이 맡아야 한다는 게 새누리당의 구상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헌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제안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형태는 이원집정부제에 가깝다. 국민의 선거로 통과된 헌법은 대통령과 정치권의 타협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새 총리가 내각을 통할하더라도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야당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여권과 충돌, 국정운영이 표류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여야가 새 총리 추천 협상에 들어가면 총리의 권한과 내각 구성 주도권을 놓고 첨예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