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표준안내서 마련…"집주인 동의 구할 때 활용하면 돼"
제도개선 없이 '설득논리'만 제공한 셈…"집주인 피해소지 없애는 게 핵심"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전세자금대출 표준안내서를 마련했지만 집주인의 불이익 해소를 고려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는 전세자금대출 때 임대인의 협조사항 등을 설명하는 표준안내서를 마련하고 은행 영업점과 부동산 중개업소에 배포하기로 했다.

세입자들이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 집주인의 협조를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임차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제2차 국민체감 20대 금융관행 개혁과제'에 포함해 추진한 방안이다.

표준안내서는 임차인이 집주인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공인된 설득논리를 제공해준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전세대출은 은행과 임차인과의 계약이므로 집주인의 집 소유권과는 무관하다는 안내를 제공하는 게 안내서의 골자다.

안내서는 집주인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경우 집주인과의 법률관계에 변동을 초래하지 않는 주택금융공사 보증 전세대출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집주인은 전세대출을 받으려는 세입자와 계약하기를 여전히 꺼리고 있다.

세입자가 전세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집주인에게 피해가 돌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은행 대출 담당자는 "질권설정이나 채권양도 등을 설명하면 복잡하고 귀찮다며 무조건 전세대출 협조를 거부하시는 임대인들이 계시다"고 전했다.

이런 집주인들의 불안감은 기우가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갚지 않은 경우 전세보증금에 우선변제권(질권)을 설정한 금융사가 집주인을 상대로 대출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보고 금융사 몰래 집주인에게서 보증금을 돌려받은 30대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 1억6천만원을 돌려줬음에도 세입자가 전세대출금 1억2천만원을 갚지 않은 데 대한 변제 책임까지 이중으로 져야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표준안내서는 "질권이 설정되거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양도가 이뤄진 경우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반환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즉, 세입자가 아닌 은행에 보증금을 돌려주기만 하면 재산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은행 역시 전세계약 만료 시기가 다가오면 이 사실을 집주인에게 별도로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관례대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주는 경우가 많다는 게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문제가 없지만 세입자가 악의를 품고 전세대출을 갚지 않은 채 보증금만 챙기고 달아난다면 집주인이 피해를 보게 된다.

한편 전세대출 과정에서 집주인에게 아무런 혜택 제공 없이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애당초 금융회사 편의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회사의 손실을 피하고자 제3자인 집주인의 법률관계를 변동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집주인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복잡하게 질권설정이나 채권양도가 되는 전세자금대출에 동의해줄 의무가 없다"며 "선의를 베풀지 않는 이상 집주인의 대출 동의 거절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산권이 걸려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을 두고 단순히 설득논리를 제공해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소극적인 방식"이라며 "집주인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보증상품을 개발하는 등 적극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박의래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