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악보 규칙 지켜야 더 빛나는 '아 피에체레'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는 차치하고서라도,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들만 봐도 어쩌면 그렇게 자유자재로 소리를 잘 내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 잘 부르는 노래만 듣고서는 나도 한번 해봄 직해서 이따금 노래방에서, 그게 아니면 아무도 없을 때 샤워를 하면서 진지하게 목에 핏대를 세워 보지만 어째 내 노래는 영 멋지지 않다. 흔히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이나 나아가 예술가들을 보면 자유롭고, 하고 싶은 대로 다 구현해 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노래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한 신체상태가 필요하다. 목의 상태와 호흡을 이어주는 흉곽과 복부의 근육도 중요하다. 이를 받쳐주는 하체의 힘도 필요하다. 그러고 나면 발음도 정확하게 하기 위한 구강과 안면의 근육도 이완돼 있어야 한다.

이렇게 준비가 된 신체도 정신적으로 긴장돼 있으면 또한 소용이 없어진다. 아무리 불같은 정열이 타올라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감수성이 나를 휘감아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면 표현이 되질 않는다. 올림픽에 나가는 운동선수들이 수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한 후 신체적으로 준비가 완벽하게 돼 있어도 큰 무대에 나가서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준비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정신적인 부분의 준비 역시 신체적인 것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준비가 잘 돼 있으면 이제 노래를 부르면 된다. 악보를 펼친다. 악보를 보니 무언가 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작곡가가 요구하는 다양한 사항이 악보 위에 펼쳐진다. 박자, 리듬, 음정, 음색, 빠르기, 길이 등을 제한하고 지시하는 규칙이 너무 많다. 단순히 최선을 다해 소리 내는 것이 노래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음정을 맞추려다 보면 호흡이 짧고, 숨을 쉬려다 보면 박자를 틀리기도 한다. 뭐 하나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님을 느낀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해 연습도 하고 다른 사람이 부르는 노래도 듣다 보면 조금씩 감도 잡혀간다. 노래한다는 것은 악보 위의 규칙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인 동시에 작곡가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내 감수성으로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작곡한 사람의 마음도 느낄 수 있다면 좀 더 그 노래에 마음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본다. 아… 역시 잘되지 않는다. 노래는 물론 마음 가는 대로 내가 내켜서 부를 수 있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과 나누며 부르려고 할 때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와 규칙, 규범을 지키면서 불러야 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숙지하고 잘 이행해 부르는 일은 음정, 박자를 잘 지키고 어울리는 음색과 빠르기, 가사가 요구하는 표현들을 지켜내는 일이다. 사람들은 그 노래를 들으며 자유롭고 즐겁게 부른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사는 일은 많은 규칙과 규범을 존중하고 익숙하게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또 그러할 때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함께 누릴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사는 것이 세상을 잘 사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음악 기호 중에 ‘아 피에체레(a piacere)’라는 표현이 있다. ‘연주자가 원하는 대로’, ‘연주자의 자유에 따라’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노래를 이어오다가 어느 한 부분에 다다라서 연주자가 하고 싶은 대로 연주하도록 두는 것인데, 연주자가 악보가 이야기하는 규칙을 잘 지켰을 때 이 부분은 그 어떤 부분보다 자유롭고 연주자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될 것이다.

이경재 < 오페라 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