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으면서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하고도 손을 잡는 ‘실리외교’를 펼치고 있다. 베트남은 군사동맹을 체결하지 않고, 외국 군사기지를 허용하지 않으며, 어느 한편에 서서 다른 편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소위 ‘3불(不)’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전략적인 균형을 위해서다.
[2016 베트남 리포트] 미국과 중국 사이 실리외교…'3불 정책' 으로 철저한 균형
◆미국과 중국 모두 ‘윈윈’

실리외교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베트남은 프랑스 및 미국과 오랜 전쟁에서 승리한 뒤 자주독립 외교노선을 견지해왔다. 프랑스, 미국과 전쟁 중에는 중국,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전쟁, 소련의 붕괴를 거치면서 이런 외교노선이 더욱 강화됐다. 통일 후 베트남의 주된 목표는 긴 전쟁의 상처를 씻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외교의 기본 노선을 이데올로기에서 경제로 전환했다.

베트남은 1970년대 말까지 서방 주요 국가,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와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특히 서방 측 국제원조 기관과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유엔,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많은 국제기구에 정식 가입했다.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지만 남중국해 영토 분쟁으로 갈등도 빚었다. 과거 전쟁국인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핵 협력 논의를 하는 등 실리를 택하는 외교 노선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시 중국과 경제협력을 활발히 하는 등 G2(미국, 중국)와 전략적인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데올로기보다 경제 우선

그동안 가장 큰 외교적 과제로 지적돼온 미국과의 관계도 1990년대 이후 급진전을 보였다. 미국은 1994년 2월 대(對)베트남 엠바고(수출금지) 전면 해제 발표와 후속 조치를 취했다. 1999년 7월 베트남과 교역 정상화에 합의하고 1999년 8월엔 호찌민 총영사관 개설 등을 단행했다. 2001년 12월엔 미국과 베트남 간 무역협정안(NTR)이 발효돼 본격적인 경제협력의 틀을 마련했다. 미국과 교역관계 정상화 이후 섬유, 신발이 대미(對美)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베트남은 2007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으로 국제경제 체제에 편입됐다. 이후 신흥 유망 시장으로 떠올라 외국인 투자가 급속히 증가했다. 실리적 경제외교를 중시하는 베트남 정부는 2015년 들어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정식으로 체결했고 유럽연합(EU)과 FTA 타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 협상 타결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

◆응우옌푸쫑의 실리외교

올해 1월 제12차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2016~2020년까지 베트남을 이끌 정치 리더를 내정하는 자리였다. 베트남 권력서열 1위 자리인 당 서기장에는 응우옌푸쫑 현 서기장의 유임이 결정됐다. 쩐다이꽝 국가주석, 응우옌쑤언푹 총리, 응우옌티킴응안 국회의장 등이 선출됐다. 응우옌푸쫑 서기장은 재선 제한 연령(65세)을 넘어선 71세인데도 유임이 결정됐다. 베트남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권력서열 3위)이 탄생하기도 했다.

응우옌푸쫑 서기장이 연임함으로써 베트남 정부의 정치 외교와 경제정책 노선은 개혁보다는 안정에 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식 시장경제 체제를 옹호하는 응우옌푸쫑 서기장을 중심으로 방만한 공기업 관리 및 민영화 추진, 빈부격차 해소와 국민의 생활 안정, 부정부패 척결 등이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국과 관계 개선

지난 1분기(1~3월) 기준 미국은 베트남의 제1 수출국(수출액 83억4000만달러, 수출액 비중 21%)이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 교류가 활발한 상태다. 베트남은 미국의 과감한 무기수출 금지조치 해제에 대한 답례 표시로 미국 항공사인 보잉으로부터 100대의 항공기를 구매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구매 금액만 113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적 성장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견제하려면 주변국들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베트남은 향후 성장잠재력이 크고 소득 수준이 높아질 경우 미국의 수출도 늘어날 전망이어서 친밀한 관계를 다지려는 양국 간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