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익순 고려대 명예교수 "회계투명성 높이려면 자유수임제 보완해야"
“중립적으로 회계처리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래야 기업도 살고 자본주의도 제대로 돌아가는 거죠.”

국내 회계업계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조익순 고려대 명예교수(92·사진)의 목소리에서는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회계인 명예의전당’의 첫 헌액인으로 선정된 그는 14일 헌액식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기업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무제표를 통해 투자자에게 알려줘야 한다”며 “회계사가 중립적인 외부감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같은 대규모 분식을 막기 위해서는 회계사가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감사할 수 있도록 감사인 선임제도를 손질하는 동시에 기업들의 자발적인 변화가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조 명예교수는 국내 회계학계 발전을 이끈 공인회계사·학자·연구원 등 회계인을 기리고 이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올해 2월 발족된 ‘회계인 명예의전당’의 첫 헌액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회계학 및 회계제도의 발전, 회계후학 양성, 국가경제제도 정립 등 60여년간 회계산업 발전을 위해 힘써온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54년 연세대 전임강사를 거쳐 1989년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36년간 회계학 강의와 연구를 통해 후학을 키웠다. 경제발전으로 회계의 중요성이 커지자 1973년 한국회계학회를 세워 초대 회장을 지냈고, 증권관리위원회 위원·증권감독원 기업평가자문위원·증권관리위원회 외부감사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회계감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1980년부터 1982년까지는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을 지내면서 회계사의 역할 정립, 외부감사제도 및 회계감사기준 제정에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공인회계사회 50년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회계 관련 일이라면 팔을 걷고 나서는 열정에 후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조 명예교수는 “회계사가 기업을 감사할 때 완전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행 자유수임제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감을 따내기 위한 경쟁에서 회계사가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수임제가 기대한 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과거처럼 상장법인에 대한 감사인 지정이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 명예교수는 한국이 1980년 지정제에서 자유수임제로 전환할 때 제도 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회계법인 대표이사의 책임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 감사를 한 회계사뿐 아니라 총괄 책임자인 대표이사에게도 부실감사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회계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어 “기업도 자기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일반 투자자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사업을 해야지, 주주를 속이려 해서는 안 된다”며 “중립적이고 정직하게 회계처리를 하는 게 장기적으로 기업이 사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