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각국 국채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거래일 기준으로 당선 이후 불과 5일 만에 30bp(1bp=0.01%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작년 12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이후 제기돼 온 국채 가격의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순간 폭락)’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옐런 수수께끼’(금융완화 기조 속 시장금리가 급등하는 현상)라 불릴 만큼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다른 금융시장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점이다. 선진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알 수 있는 달러인덱스는 100을 넘어섰다. 트럼프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도 달러당 30원 이상 뛰었다.
글로벌 '자금 대이동' 시작
글로벌 자금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크게 두 방향이다. 하나는 예상치 못한 변화에 따른 ‘금융 노마드’ 현상이 발생하면서 시중자금이 부동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美 기준금리 인상 前 튀어오른 국채금리…신흥국 견딜 수 있을까

다른 하나는 국채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증시로 ‘대이동(great rotation)’하면서 주가가 비교적 좋은 흐름(국내 문제가 많은 한국은 소외)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금 대이동' 시작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년 1월 출범할 트럼프 시대를 앞두고 ‘금융 완화’보다 ‘재정정책’이 선호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금융위기 이후 8년간 지속돼온 초(超)금융완화 정책이 마무리될 경우 채권에 낀 거품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 9월 말 기준으로 마이너스 금리 채권만 하더라도 12조6000억달러(약 1경5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시대에 추진될 경제정책, 즉 ‘트럼프노믹스’도 국채금리를 급등시키는 요인으로 가세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트럼프의 캐치프레이즈인 ‘미국의 재건’을 위해서는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복구하는 과제가 가장 적합하다. 월가에 1930년대식 ‘트럼프판 뉴딜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자금 대이동' 시작
총수요 진작책뿐만 아니라 총공급 면에서 법인세, 소득세 등의 대폭적인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책도 국채금리를 급등시키는 요인이다. 트럼프의 감세정책은 2차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라는 정책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미국 경제를 구해낸 1980년대 초 ‘레이거노믹스’를 연상케 한다.

감세정책의 이론적 토대인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보면 세율과 재정수입 간 정(正)의 구간을 ‘표준 지대’, 부(負)의 구간을 ‘비표준 지대’라 부른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출마 이전부터 세금 부담이 너무 높아 경제효율을 떨어뜨린다며 세율을 낮춰야 경기가 살아나고 재정수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외쳐왔다.

재정지출과 감세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재정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최소한 경기가 살아나기까지는 재정적자가 불가피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때 전통적인 공화당의 관행처럼 국채로 메운다면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국채금리가 빠르게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국채금리가 급등함에 따라 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융 완화의 필요성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각국의 중앙은행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금리체계(interest system)’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또 다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 재닛 옐런 등 각국 중앙은행 총재는 ‘그린스펀 수수께끼(정책금리는 인상했는데 시장금리는 내리는 현상)’보다 ‘옐런 수수께끼’를 더 우려한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는데도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은 성급한 출구전략과 같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 경우 1930년대 당시 Fed 의장이었던 에클스가 성급한 출구전략(금리인상) 추진으로 대공황을 낳게 한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에 대한 우려가 급부상할 수 있다.

금융사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올 8월 잭슨 홀 미팅에서 옐런 의장의 추가 금리인상 시사 발언 이후 국채시장에서 자금이 빠지고 있지만 대부분 금융사는 지난 8년간 매입한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금융사는 북한 문제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국 혼란이 겹치면서 보유 국채를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국채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서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자의 강력한 파리기후협정과 탄소세 부과 반대에 따라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원유 등 원자재를 수출하는 국가(러시아 브라질 등)에서는 이 우려가 의외로 높다.

앞으로 옐런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와 글로벌 증시 앞날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간단한 것은 장기채 금리상승에 맞춰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이다. 경기가 과열일 때는 이 방안은 바람직하지만 최근처럼 경기가 받쳐 주지 못할 때는 오히려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발권력을 동원하거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로 조성된 재원으로 장기채를 매입해 장기채 금리를 내리는 일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장기채 매물이 많지 않아 수요 위주의 국채수급 구조를 더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 유동성도 더 풀려 경고등이 켜진 자산시장의 거품을 더 키워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이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OT를 추진하기보다는 종전과 다른 제3의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채 위주로 왜곡된 수급구조를 풀기 위해 기한을 정해 국채 매도 물량을 수요에 맞춰 조절해 나가는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추진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것은 내년 1월에 출범할 트럼프 정부로서도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재정지출을 늘린다 하더라도 국채금리가 급등하면 민간수요가 상쇄돼 총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이른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경기회복에도 역행한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기업인 출신답게 민간자본을 대거 참여시켜 이런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추진했던 ‘BTL(Build Transfer Lease·민자 사업)’ 방식과 비슷하다. 전제조건인 수익률 보전은 주식, 채권 등 전통적인 민간투자 수익률이 떨어져 대체투자가 대세인 만큼 오히려 인기를 끌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