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지도
9년여를 끌어온 우리 정부와 구글 간의 지도 논쟁이 지난주 지도 데이터 반출을 불허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안보 여건상 군사시설 등 기밀 정보를 고스란히 노출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구글에 기밀시설 등은 저해상도로 표시하는 등 보완조치를 요구했으나 구글은 최신·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회사 방침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섰다고 한다.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은 구글이 괘씸하기도 하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세계 표준’은 막강한 무기다. 구글의 지도 서비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여행객을 많이 불러모으려는 각국 정부로서는 구글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 협상은 한국이 구글 서비스에 들어갈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했다.

지도는 문자 못지 않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 지도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데 45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 때 그려진 것이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영토를 표시하기 위해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한 고대 국가 때부터 지도는 국가의 중요한 비밀에 속했다. 고려 의종 때는 나라 지도를 송나라에 보내려던 이들이 처벌당한 기록도 있다. 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꼬불꼬불한’ 길까지 너무 자세하게 표시해 놓아 조정으로부터 이적행위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는 애사도 있다.

그러나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다. 위성사진을 통해 모든 것을 하늘에서 내려보고 있는데 지도가 없다고 군사시설이 보호된다고 믿는 것도 이상하다. 또 유럽과 러시아 등의 민간업체를 통해 한국의 정밀지도가 이미 유포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에서도 지도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엄연히 있다. 지도를 기밀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구글이라는 플랫폼을 바탕으로 증강현실, 위치기반, 관광산업 등과 관련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던 국내 IT업체들엔 맥 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구글 지도는 정확도가 떨어져 이런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포켓몬고가 한국에선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구글이 재신청 할 수 있지만 정부가 지도를 지켜야 할 정보로 생각하는 한, 반출은 한동안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지도를 이용한 신산업 창출효과도 관심있게 봐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만 안 되는’ 것이 자꾸 늘어나서는 곤란하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