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22일 오후 3시31분

항암제 신약후보물질 개발업체 신라젠의 다음달 상장을 둘러싸고 투자은행(IB)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상용화가 불투명한 기술을 기반으로 매긴 적자기업 가치가 무려 2조원에 달해서다. 임상 실패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 제도의 위험성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22일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신라젠은 주당 1만5000~1만8000원에 신주 1000만주 공모를 준비 중이다. 전체 공모금액은 1500억~1800억원에 달한다. 2005년 기술특례 상장 제도 도입 이후 최대 기업공개(IPO)다. 이 제도를 활용해 상장한 전체 34개사의 평균 공모금액이 172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머드급’ 공모다.

항암 바이러스 계열 면역치료제인 ‘펙사벡’의 기술력에 기초해 주관사가 산정한 기업 가치는 코미팜에 이어 코스닥시장 6위급이다.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은 한미약품과 녹십자 등을 참고해 이 회사 주당 예상가치를 2만8100원으로 산정했다. 발행주식총수(전환사채 등 포함 7119만여주)를 적용하면 시가총액은 약 2조원에 이른다. 신라젠이 2014년 3월 펙사벡 기술을 보유한 미국 제네렉스 지분 70% 인수 당시 지급한 금액으로 알려진 1억5000만달러(약 1760억원)의 10배를 웃돈다.

문제는 뛰어난 기술력과 별개로 상용화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신라젠은 201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으로부터 간암 대상 펙사벡의 임상 3상 시험 개시 승인을 얻어 시험을 진행 중이다. 유명 학술지 네이처바이오테크놀로지에 따르면 FDA가 승인한 임상 3상 시험의 성공확률(펙사벡과 같은 희귀 항암제 기준)은 2003~2011년 평균 58.7%다. 1상(85.1%)과 2상(61.0%)보다 낮다. 여기서 신약허가를 얻으려면 75.7%의 확률에 다시 들어야 한다.

공모 가격이 회사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위험 때문이다. 한 공모주 펀드매니저는 “기관투자가들이 수요예측 때 다양한 위험 요인을 고려할 것”이라며 “한미약품의 일부 신약 3상 실패 등으로 바이오업종 투자 분위기가 좋지 않아 공모가가 많이 깎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요예측은 23~24일 시행한다.

펙사벡 성패에 따라 기술특례 상장의 위험성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기술특례 상장은 자기자본이 적거나(10억원 이상 허용) 적자를 내더라도 기술력이 뛰어난 유망 기술기업이 증권시장에 손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한 제도다. 한 IB담당 임원은 “기술특례는 그동안 일반투자자에게 ‘기술력이 뛰어난 강소기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창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며 “어떤 측면에서 보면 위험한 확률 게임에 비전문가인 일반투자자를 대규모로 모집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신라젠의 연결 영업수익(매출 개념)은 올 1~9월 42억원, 영업손실은 302억원이다. 작년엔 23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일반투자자 청약은 오는 28일부터 이틀간 받는다.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 또는 하나금융투자와 동부증권, 메리츠종금증권에서 청약할 수 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