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노동계는 촛불광장 위의 외딴섬?
주변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촛불을 밝히게 만든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위임해준 권한을 비선 실세가 범죄 행위에 활용토록 방치한 데 따른 자존감 붕괴와 이를 바로잡아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분노다. 다른 하나는 정치·경제·외교·안보 모두 중차대한 시점에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기능을 잃어 국정 공백을 초래했고, 그 공백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나라 안팎의 여건을 살펴보면 비관론은 더욱 힘을 얻는다. 경제는 어느 업종 하나 밝은 구석을 찾기 힘들다. 새해 사업계획을 짜고 글로벌 시장 내 경쟁력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해야 할 기업 총수들은 줄줄이 예정된 국정감사 특검 등에 벌써 발목을 잡혔다. 곧 들어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정책적 불확실성, 슈퍼 파워로 자리매김하려는 중국의 외교적 확장, 최근 들어 부쩍 두드러지는 일본의 군사력 강화 시도 등에 대한 대응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또 '전가의 보도' 총파업인가

북한의 김정은은 잇단 미사일 발사로 남북 간 긴장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위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상황이 이러니 “앞으로 먹고살 일이 걱정”이란 한숨 섞인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자녀들과 부모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광화문으로 몰려나온 촛불 민심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정치적·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떳떳한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거다.

노동계의 움직임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총파업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또 휘두를 채비를 갖추고 있다. 깃발을 흔들고 투쟁 구호를 외치다 촛불로 가득찬 광화문광장에서 외면을 당했는데도 말이다.

‘총대’는 민주노총이 멨다. 30일 대통령 퇴진과 각종 정책 폐기 등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4시간 이상 벌이겠다고 한다. 폐기를 요구하는 정책 대부분은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이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고용을 유연화해 노동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을 없었던 일로 하자는 격이다. 민주노총의 주력인 금속노조는 24일까지 찬반투표를 벌여 총파업에 합류할 예정이다. 공공운수노조와 보건의료노조 등은 이미 적극 참여를 결정한 터다.

촛불에 색깔 덧씌워서야

광화문의 촛불이 비추고자 하는 의도는 살기 좋은 나라로 안내하는 이정표일 것이다. 폭력적 양태가 나타나면 함성을 질러 자제시키고, 시위 현장을 깨끗이 청소한 것은 성숙한 민도의 발로다. 토요일 집회는 혹시나 있을 나쁜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 동의다.

그런데도 노동계는 총파업 일정을 평일로 잡았다. 한 대기업 노무담당 임원은 “국가 이미지와 그 나라 제품 이미지가 동일시되는 시대”라며 “민심과 동떨어진 노동계의 총파업은 국가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지는 만큼 글로벌 경쟁력 저해 요인”이라고 한탄했다.

촛불이 만든 빛은 그대로 비치게 하는 것이 맞다. 노동계의 총파업은 촛불에 다른 색깔을 덧씌우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좋은 나라를 갈구하는 민심을 호도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노동계가 관행적인 총파업을 떨치고 일어서지 못한다면 그들의 종착역은 쉽게 예상된다. 촛불 광장 위의 외딴섬이다.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