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업계 라이벌인 삼성과 LG가 또다시 맞붙는다. 차량에 들어가는 전자장비인 전장(電裝)시장을 놓고서다. 지난 14일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업체인 하만을 인수하면서 ‘판’이 마련됐다. 이전 10년간 전장사업을 영위하는 정보기술(IT) 하드웨어업체는 세계적으로도 LG전자가 유일했다. 두 회사 모두 전장사업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LG그룹에선 구본준 신성장사업추진단장(부회장)이 직접 사업을 챙기고 있다.
'가전 맞수' 삼성·LG, 전장사업에서 재격돌
◆규모와 관록

규모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커 보인다. 하만의 덩치가 만만치 않아서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매출이 70억달러인데 시장에서는 이 중 50억달러(약 5조9000억원) 정도가 자동차 분야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3만명의 직원 중 연구인력이 1만5000명에 이른다. 차량용 오디오와 비디오, 내비게이션 등 AVN이라고도 불리는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 시장의 24%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해당 분야 매출은 43억달러에 이르렀다. 업계 관계자는 “전자업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매출 규모도 큰 인포테인먼트 시장에서 하만이 이미 1위를 하고 있다는 점은 관련 시장에 발을 내딛는 삼성전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LG전자에서 전장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는 올 1~3분기 매출 1조9073억원을 올렸다. 인원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4350명이다. 하지만 차량 안팎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통신장치인 텔레매틱스 시장에서는 2010년부터 1위를 하고 있다. 2005년 전장사업을 시작해 규모를 키워온 만큼 다양한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GM 쉐보레 볼트EV에 들어가는 구동모터와 충전모듈 등 핵심 구동장치도 생산한다. LG화학과 LG이노텍 등을 포함한 LG의 자동차 관련 매출은 지난해 4조원을 넘어서 규모도 만만치 않다.

◆M&A 대 내재화

똑같이 전장사업을 겨냥하고 있지만 두 회사의 전략은 다르다. 삼성전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과 시장을 획득하는 데 비해 LG전자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자체 개발에 힘쓰고 있다. 삼성은 올해 1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자율주행자동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누토노미에, 작년 6월에는 인포테인먼트 소프트웨어업체 빈리에 투자했다. LG에서는 LG전자 외에도 LG이노텍(조명, 액세서리) LG디스플레이(차량용 디스플레이) 등이 역할을 분담해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LG전자 한 관계자는 “계열사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과 같은 것이면 다 끝난 M&A도 중단할 정도”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장사업은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LG 모델에 강점이 있다”며 “스마트카 시장을 놓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삼성처럼 적극적인 M&A가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TV나 가전 등과는 다른 경쟁 양상이 펼쳐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를 발표한 14일, 전장사업 가치 재조명에 LG전자 주가도 1.42% 올랐다”며 “한정된 시장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양측이 각자의 영역을 넓히는 윈윈 게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