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불수능, 난이도보다 '시그널'과 달랐던 게 문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쉬운 수능' 여러 차례 강조한 교육 당국
내년 절대평가 앞둔 영어 어렵게 출제해 '혼선'
내년 절대평가 앞둔 영어 어렵게 출제해 '혼선'
[ 김봉구 기자 ]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높은 난이도가 아니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그동안 교육 당국이 꾸준히 발신해 온 시그널과 달랐다는 점이다. ‘쉬운 수능’ 기조를 되풀이 강조했지만 실제 시험은 엇박자를 냈다. 혼란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지난 17일 치러진 수능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어려웠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전년도 수능보다 난이도 있게 출제됐다. 올해는 ‘불수능’이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입시업계는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국영수 난이도가 동반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한경닷컴은 입시전문가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쉬운 수능 기조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가. 두 번째, 실제로 출제 기조가 바뀌었든 아니든 왜 교육 당국은 적절한 시그널을 주지 않았는가.
◆ 쉬운 수능 주장하던 평가원장, 정작 취임 뒤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선 견해가 나뉘었다. 이금수 EBS 진로진학 담당 전속교사는 “쉬운 수능 기조가 바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인호 용인외대부고 3학년부장도 “기조 자체가 흔들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물수능’ 정점을 찍은 2015학년도 수능으로 인한 착시효과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유보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오락가락 정책이 수험생에게 혼란을 안긴 측면이 있는 건 맞다”고 했다. 평이한 수능을 표방해 온 교육부가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변별력을 높인 점은 문제라고 짚었다.
“쉬운 수능 기조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준비해 온 학교 현장은 당황스럽다”는 평가를 내린 김종우 양재고 진로진학부장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2015학년도 수능 직후 수능의 중장기 방향 논의를 위해 출범한 수능개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적 있다.
고교 교사로는 유일하게 위원회에 참여했던 김 부장은 “수능개선위는 쉬운 수능의 방향성을 일관되게 가져갔다”고 강조했다. 함께 위원을 맡았던 김영수 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이같은 방향성에 의견을 같이 했다고 기억했다. 평가원은 수능을 출제하는 기관이다.
실제로 김 원장은 당시 ‘물수능’ 비판에 맞서 쉬운 수능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건 상위 1~2% 수험생에만 초점을 맞춘 얘기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작년 김 원장 취임 후의 두 차례 수능은 조금씩 어려워졌다. ◆ 작년 수능 기준? 모의평가 수준? 헷갈린 수험생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년보다 어렵게 출제할 것이라는 특별한 시그널을 주지는 않았다”는 공통의견을 전제로, 세부 영역별로는 온도차가 났다.
물론 수험생들은 6월·9월 모의평가에서 유사한 출제 경향을 경험했다. 하지만 모의평가와 실제 수능의 난이도 격차가 상당했던 전례가 있었다. 이런 ‘난이도 의구심’을 감안하면 교육 당국의 메시지가 중요했는데, 기조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김종우 부장은 영어를 콕 집어 문제 삼았다. 그는 “국어는 올해 통합형으로 바뀌는 형식 변화 탓에 웬만큼 난이도 있을 것이란 예상은 했다. 수학도 상위권에 변별력을 주는 한 두 문제 정도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영어가 이렇게 어렵게 나오는 건 정말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내년 수능부터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그는 “쉽게 출제한다고 시그널을 줬고 수험생들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렵게 출제됐다”고 꼬집었다. 이금수 교사도 “절대평가로 가는 상황에서 난이도가 올라간 걸 보면 출제진이 수험생들 수준을 제대로 파악 못한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이러한 경향이 이어지면 대학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전망. 대학들은 내년 입시안에서 수능 영어 실질 반영비율을 크게 낮췄다. 절대평가 체제의 영어 점수는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대는 영어 등급간 점수 차를 0.5점씩만 두기로 했다. 원점수 100점 만점에 0점을 받아도 실질적 감점은 4점에 그친다.
올해와 내년은 달리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종운 이사는 내년 시행되는 절대평가와 ‘독립적’으로 출제했다는 수능출제위원장 설명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올해 영어가 쉬울 것이라는 예상은 ‘기대’의 영역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 '쉬운 수능≠2015 수능'…난이도 예단하면 곤란
종합적으로 봤을 때 ‘쉬운 수능’을 최근 가장 쉬웠던 2015학년도 수준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는 조언이 잇따랐다.
박인호 부장은 “2015학년도 수능은 문제가 있었다. 3년간 열심히 준비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 차이가 없어지고, 실력보다 실수로 당락이 갈렸다”면서 “올해는 대체로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하며 어느 정도 변별력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출제됐다고 본다. 탐구 영역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가 줄어든 점도 높이 산다”고 총평했다.
오종운 이사도 “내년 절대평가로 바뀌는 영어는 올해보다 쉬울 것이다. 그러면 국어와 수학은 일정 수준 이상의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올해 불수능이란 반응이 나왔다 해서 내년 수능 난이도를 확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지난 17일 치러진 수능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어려웠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전년도 수능보다 난이도 있게 출제됐다. 올해는 ‘불수능’이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입시업계는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국영수 난이도가 동반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한경닷컴은 입시전문가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쉬운 수능 기조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가. 두 번째, 실제로 출제 기조가 바뀌었든 아니든 왜 교육 당국은 적절한 시그널을 주지 않았는가.
◆ 쉬운 수능 주장하던 평가원장, 정작 취임 뒤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선 견해가 나뉘었다. 이금수 EBS 진로진학 담당 전속교사는 “쉬운 수능 기조가 바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인호 용인외대부고 3학년부장도 “기조 자체가 흔들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물수능’ 정점을 찍은 2015학년도 수능으로 인한 착시효과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유보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오락가락 정책이 수험생에게 혼란을 안긴 측면이 있는 건 맞다”고 했다. 평이한 수능을 표방해 온 교육부가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변별력을 높인 점은 문제라고 짚었다.
“쉬운 수능 기조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준비해 온 학교 현장은 당황스럽다”는 평가를 내린 김종우 양재고 진로진학부장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2015학년도 수능 직후 수능의 중장기 방향 논의를 위해 출범한 수능개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적 있다.
고교 교사로는 유일하게 위원회에 참여했던 김 부장은 “수능개선위는 쉬운 수능의 방향성을 일관되게 가져갔다”고 강조했다. 함께 위원을 맡았던 김영수 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이같은 방향성에 의견을 같이 했다고 기억했다. 평가원은 수능을 출제하는 기관이다.
실제로 김 원장은 당시 ‘물수능’ 비판에 맞서 쉬운 수능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건 상위 1~2% 수험생에만 초점을 맞춘 얘기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작년 김 원장 취임 후의 두 차례 수능은 조금씩 어려워졌다. ◆ 작년 수능 기준? 모의평가 수준? 헷갈린 수험생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년보다 어렵게 출제할 것이라는 특별한 시그널을 주지는 않았다”는 공통의견을 전제로, 세부 영역별로는 온도차가 났다.
물론 수험생들은 6월·9월 모의평가에서 유사한 출제 경향을 경험했다. 하지만 모의평가와 실제 수능의 난이도 격차가 상당했던 전례가 있었다. 이런 ‘난이도 의구심’을 감안하면 교육 당국의 메시지가 중요했는데, 기조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김종우 부장은 영어를 콕 집어 문제 삼았다. 그는 “국어는 올해 통합형으로 바뀌는 형식 변화 탓에 웬만큼 난이도 있을 것이란 예상은 했다. 수학도 상위권에 변별력을 주는 한 두 문제 정도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영어가 이렇게 어렵게 나오는 건 정말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내년 수능부터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그는 “쉽게 출제한다고 시그널을 줬고 수험생들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렵게 출제됐다”고 꼬집었다. 이금수 교사도 “절대평가로 가는 상황에서 난이도가 올라간 걸 보면 출제진이 수험생들 수준을 제대로 파악 못한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이러한 경향이 이어지면 대학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전망. 대학들은 내년 입시안에서 수능 영어 실질 반영비율을 크게 낮췄다. 절대평가 체제의 영어 점수는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대는 영어 등급간 점수 차를 0.5점씩만 두기로 했다. 원점수 100점 만점에 0점을 받아도 실질적 감점은 4점에 그친다.
올해와 내년은 달리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종운 이사는 내년 시행되는 절대평가와 ‘독립적’으로 출제했다는 수능출제위원장 설명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올해 영어가 쉬울 것이라는 예상은 ‘기대’의 영역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 '쉬운 수능≠2015 수능'…난이도 예단하면 곤란
종합적으로 봤을 때 ‘쉬운 수능’을 최근 가장 쉬웠던 2015학년도 수준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는 조언이 잇따랐다.
박인호 부장은 “2015학년도 수능은 문제가 있었다. 3년간 열심히 준비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 차이가 없어지고, 실력보다 실수로 당락이 갈렸다”면서 “올해는 대체로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하며 어느 정도 변별력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출제됐다고 본다. 탐구 영역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가 줄어든 점도 높이 산다”고 총평했다.
오종운 이사도 “내년 절대평가로 바뀌는 영어는 올해보다 쉬울 것이다. 그러면 국어와 수학은 일정 수준 이상의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올해 불수능이란 반응이 나왔다 해서 내년 수능 난이도를 확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