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은 정부가 다 내고…연 1조 부담은 한전 몫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사용량이 조금만 늘어도 요금이 과도하게 올라가는 ‘징벌적 누진제’라는 점에서 개편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6단계를 3단계로 축소하고, 최저 구간과 최고 구간 격차를 기존 11.7배에서 3배 정도로 좁히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안대로라면 현행 1단계부터 6단계까지 모든 구간 사용자는 어느 누구도 요금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 이는 애초 방향과 배치된다.

당초 원가보다 현격히 높게 요금이 매겨지는 구간(5~6단계)의 부담은 낮추고, 원가보다 턱없이 낮은 구간(1~2단계)은 현실에 맞게 조정한다는 게 원칙이었다. 이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개세주의’ 원칙과 비슷하다. 정부는 개편안에서 원가보다 낮은 구간에도 지원금을 주는 형태로 요금 부담 증가를 없앴다. ‘전기료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누진제 개편에 따른 요금 감소분은 정부 재정 대신 한국전력 이익금으로 전액 메우기로 했다. 개편안대로라면 한전의 연간 수입은 1조원 가까이 줄어든다. 한전은 지난해 11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올해 상반기에도 6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1조원 정도 연 수입이 줄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전은 상장사다. 지분 절반 가까이를 시장이 소유하고 있다. 이런 한전의 이익금을 정부의 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한 ‘쌈짓돈’으로 쓰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6월 에너지 고효율 가전제품 소비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14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을 한전 이익으로 메우기도 했다. 더구나 한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성 적자 기업의 대명사였다. 지금도 누적부채가 107조원(지난해 기준)이 넘는다. 한전의 올해 이익 증가는 발전소를 가동하는 데 쓰이는 석탄·가스·석유가격이 떨어진 영향도 컸다. 원료가격이 상승하면 다시 적자로 돌아설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한전이 누진제 개편의 모든 부담을 안게 된 데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말들이 많다. 시장에서도 재주는 한전이 부리는데, 생색은 정부가 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