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차은택 씨를 만났다고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최순실 씨(60·구속기소) 측근으로, 정부가 추진한 ‘문화융성’ 사업에 개입해 각종 이권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는 차씨를 박 대통령이 김 전 실장에게 직접 소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최씨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해 온 김 전 실장의 해명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커지는 의혹…김기춘, 최순실 정말 몰랐을까
김 전 실장은 27일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께서 차은택이라는 사람이 정부의 문화융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니 한 번 만나 본 뒤 보고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지시에 따라 차씨를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10분간 차를 마셨다는 게 김 전 실장의 설명이다.

앞서 차씨 변호인인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최씨가 하는 사업 얘기를 차씨가 선뜻 믿지 못하자 최씨가 어디론가 가보라고 했다고 한다”며 “최씨가 알려준 장소는 김 전 실장의 공관이었고, 그곳엔 당시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정성근 장관 후보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차씨와 만난 사실은 인정했지만 최씨를 모른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지금까지 “(비서실장으로서) 무능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최씨를 모른다”고 항변해 왔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이 한 번 면담 후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이런 걸 보고하라고 해서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났다”며 “(차씨도) 그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차씨와 10분간 차를 마셨을 뿐 차씨의 사업에 관여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차씨 변호인의 주장과 달리 당시 정 후보자나 김 전 차관은 함께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언젠가 검찰이 부르면 가서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차씨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장모, 최씨와 함께 골프를 친 것도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그는 “우 전 수석과 차씨는 일면식도 없다”며 “다만 최씨 주도로 우 전 수석 장모가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친 적은 있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이화여대 교수였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날 차씨와 차씨의 측근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포스코의 광고계열사 포레카 지분을 강탈하려고 한 혐의(강요미수 등)로 구속기소했다. 차씨는 최씨에게 지인 이모씨와 신모씨를 KT 광고담당 임원으로 추천하고 자신의 회사 플레이그라운드가 68억1700만원 상당의 KT 광고를 수주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강요)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최씨의 공소장에 이어 차씨의 공소장에서도 이 같은 혐의의 공범으로 적시됐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