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인도 모디의 도박! 화폐개혁…한국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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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각국 화폐개혁 단행
신흥국. 리디노미네이션 병행 실패
한국, 국민 공감대 형성 전제 추진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신흥국. 리디노미네이션 병행 실패
한국, 국민 공감대 형성 전제 추진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또 한 차례 도박을 단행했다. 전체 화폐유통 물량의 86%를 차지하는 구권 500루피, 1000루피를 신권 500루피, 2000루피로 다음달 30일까지 교환하는 화폐개혁이다. 성공한다면 지난 8월 통과한 상품소비세(GST, 내년 4월 시행)에 이어 인도 경제의 양대 숙원과제가 해결된다.
모디 총리가 화폐개혁을 추진하는 가장 큰 목적은 인도 경제의 고질병인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 있다. 2000년 이후 각국은 위조지폐 방지, 부패척결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신권을 발생해왔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를 새롭게 도안했고, 일본은 20년 만에 1만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발행했다. 신흥국도 앞다퉈 신권을 내놨다.
하지만 목적 달성 여부는 구별된다. 신권을 발행해 목적을 달성한 국가는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기존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되 다른 하나는 화폐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은 병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선진국이 해당한다.
신흥국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결부시켜 신권을 발행했다. 그 후 이들 국가는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대외 위상 증가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물가가 앙등하고 부동산 투기가 일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졌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가 대표적인 국가다. 인도의 화폐개혁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 보이는 것도 리디노미네이션이기 때문이다.
법화(法貨·legal tender) 시대에 있어 신권을 발행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경제활동 비중이 놓은 대기업과 부자, 권력층일수록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신권 발행과 리디노미네이션 단행의 목적을 거둘 수 있다.
선진국은 이 전제조건의 성숙 여부를 중시했지만 신흥국은 위조지폐가 발견되거나 부정부패가 심하고 대규모 자금이탈이 심한 긴박한 상황에서 그것도 급진적인 리디노미네이션까지 병행해 단행했다. 전제조건 충족 여부보다 상황논리에 밀려 논의되고 추진됐다는 의미다. 이 점이 결과의 차이다.
우리도 잊을 만하면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반복되는 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위상 간 불균형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면에서 한국은 선진국에 속한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 무역액 8위, 외화보유액과 시가총액은 각각 7위다. 20K-50M(1인당 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클럽에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가입했다.
하지만 부패지수, 지하경제 규모, 위조지폐 발견 건수, 조세피난처에 숨겨둔 ‘검은돈’ 규모로 평가되는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신흥국으로 분류된다. 애초 일정(매년 12월9일 ‘부패의 날’에 앞서 발표)보다 늦게 올해 1월 발표한 독일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지수(CPI)를 보면 한국은 37위로, 하드웨어 위상 대비 부패가 가장 심한 국가다.
오히려 포트폴리오상 투자 지위는 더 퇴보했다. 하드웨어 위상에 가중치가 높은 파이낸셜타임스(FTSE)지수로는 2009년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2014년 도덕적 책임 등 소프트웨어 위상을 중시해 평가하는 모건스탠리(MSCI)지수에서 2008년 편입된 선진국 예비 명단에서조차 빠지면서 신흥국으로 전락했다. 어정쩡한 국가가 된 셈이다.
우리처럼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자 위치인 국가는 최근처럼 대전환기일수록 쏠림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선진국 대우를 받으면서 외국자금이 대거 유입된다. 하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신흥국으로 전락해 들어온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큰 어려움이 닥친다. ‘경기 순응적 쏠림현상'이다.
우리 국민의 화폐생활에 있어서도 경제 규모가 커졌지만 1962년 화폐개혁 이후 액면단위는 그대로 유지돼 회계단위가 경(京)원에 이른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각종 가격은 1000분의 1로 축소해 표시한 지 오래됐다. 종전 ‘5000’으로 표기하던 짜장면 한 그릇 값을 ‘5.0’으로 표기한다는 뜻이다. 일부에선 국내 정세가 혼탁한 최근 같은 상황에 기습적으로 단행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인상, 내년 1월 트럼프 정부 출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등 굵직한 대외 현안을 앞두고 국내 정세가 혼탁한 때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거나, 논의하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국내 정세가 안정되고 국민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질 때 논의하고 추진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모디 총리가 화폐개혁을 추진하는 가장 큰 목적은 인도 경제의 고질병인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 있다. 2000년 이후 각국은 위조지폐 방지, 부패척결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신권을 발생해왔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를 새롭게 도안했고, 일본은 20년 만에 1만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발행했다. 신흥국도 앞다퉈 신권을 내놨다.
하지만 목적 달성 여부는 구별된다. 신권을 발행해 목적을 달성한 국가는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기존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되 다른 하나는 화폐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은 병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선진국이 해당한다.
신흥국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결부시켜 신권을 발행했다. 그 후 이들 국가는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대외 위상 증가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물가가 앙등하고 부동산 투기가 일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졌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가 대표적인 국가다. 인도의 화폐개혁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 보이는 것도 리디노미네이션이기 때문이다.
법화(法貨·legal tender) 시대에 있어 신권을 발행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경제활동 비중이 놓은 대기업과 부자, 권력층일수록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신권 발행과 리디노미네이션 단행의 목적을 거둘 수 있다.
선진국은 이 전제조건의 성숙 여부를 중시했지만 신흥국은 위조지폐가 발견되거나 부정부패가 심하고 대규모 자금이탈이 심한 긴박한 상황에서 그것도 급진적인 리디노미네이션까지 병행해 단행했다. 전제조건 충족 여부보다 상황논리에 밀려 논의되고 추진됐다는 의미다. 이 점이 결과의 차이다.
우리도 잊을 만하면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반복되는 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위상 간 불균형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면에서 한국은 선진국에 속한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 무역액 8위, 외화보유액과 시가총액은 각각 7위다. 20K-50M(1인당 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클럽에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가입했다.
하지만 부패지수, 지하경제 규모, 위조지폐 발견 건수, 조세피난처에 숨겨둔 ‘검은돈’ 규모로 평가되는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신흥국으로 분류된다. 애초 일정(매년 12월9일 ‘부패의 날’에 앞서 발표)보다 늦게 올해 1월 발표한 독일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지수(CPI)를 보면 한국은 37위로, 하드웨어 위상 대비 부패가 가장 심한 국가다.
오히려 포트폴리오상 투자 지위는 더 퇴보했다. 하드웨어 위상에 가중치가 높은 파이낸셜타임스(FTSE)지수로는 2009년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2014년 도덕적 책임 등 소프트웨어 위상을 중시해 평가하는 모건스탠리(MSCI)지수에서 2008년 편입된 선진국 예비 명단에서조차 빠지면서 신흥국으로 전락했다. 어정쩡한 국가가 된 셈이다.
우리처럼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자 위치인 국가는 최근처럼 대전환기일수록 쏠림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선진국 대우를 받으면서 외국자금이 대거 유입된다. 하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신흥국으로 전락해 들어온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큰 어려움이 닥친다. ‘경기 순응적 쏠림현상'이다.
우리 국민의 화폐생활에 있어서도 경제 규모가 커졌지만 1962년 화폐개혁 이후 액면단위는 그대로 유지돼 회계단위가 경(京)원에 이른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각종 가격은 1000분의 1로 축소해 표시한 지 오래됐다. 종전 ‘5000’으로 표기하던 짜장면 한 그릇 값을 ‘5.0’으로 표기한다는 뜻이다. 일부에선 국내 정세가 혼탁한 최근 같은 상황에 기습적으로 단행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인상, 내년 1월 트럼프 정부 출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등 굵직한 대외 현안을 앞두고 국내 정세가 혼탁한 때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거나, 논의하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국내 정세가 안정되고 국민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질 때 논의하고 추진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