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도 막지 못한 '촛불 민심'
눈비가 흩날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의 민심은 뜨거웠다. 서울 도심 촛불집회에만 주최 측 추산 150만명(경찰 추산 27만명)이 몰려들었다. 법원이 처음으로 청와대 200m 앞까지 행진과 집회를 허용, 시위대가 청와대 포진 행진에 나섰지만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참가자들은 “박 대통령을 구속하라” 등 한층 격해진 구호를 외치면서도 비폭력 방침을 고수했다. 풍자와 해학이 더해져 집회 분위기는 종전보다 다채로워졌다는 평가다.

1500여개 시민단체가 연대한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지난 26일 열린 5차 촛불대회에 전국 190만명(경찰 추산 33만명)이 운집했다고 추산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한 달 넘게 지속돼 피로가 누적된 데다 궂은 날씨로 결집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의혹’이 검찰 수사를 거쳐 ‘합리적 의심’ 수준을 넘어섰음에도 청와대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데 시민들이 분노했다는 분석이다. 이성민 군(18·하나고 3학년)은 “청와대는 시민들의 분노가 사그라질 것이라고 생각해 어물쩍 넘기면 된다고 착각하는 듯하다”며 “친구들과 함께 2주 연속 집회에 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하야해야 매 주말 반복되는 촛불집회가 끝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교수 100여명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종로타워 앞에 모여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서울대 교수가 집단 행진에 나선 것은 1960년 4·19혁명 이후 처음”이라며 “지금 시국은 4·19혁명과 1987년 6월항쟁의 뒤를 잇는 중대 분기점”이라고 말했다.

오후 6시 본행사에선 양희은 안치환 등 가수 공연, 시민들의 시국 발언으로 분위기가 고조됐다. 오후 8시가 되자 참가자들은 1분간 일제히 촛불을 끄는 ‘1분 소등’ 행사를 했다. 참가자들은 수십만개 촛불을 끄고 어둠에 잠긴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를 연호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저항의 뜻으로 기획했다”며 “촛불집회에 나올 수 없는 시민들도 집에서 전등을 끄는 등 소등행사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본행사에 앞서 청와대 방면 사전행진에서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를 벌이며 분노를 표출했다. 상당수는 “박근혜 퇴진”이 아니라 “박근혜 구속”이란 구호를 외쳤다. 청와대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신교동 교차로에서 주최 측은 “지금은 평화 시위를 하고 있지만 계속 (대통령이) 우리를 기만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본 행사가 끝난 뒤 2차 행진에서도 통의동 로터리 등에서 밤 12시가 넘도록 대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비폭력 집회를 이어간 끝에 연행자는 이날도 한 명도 없었다.

김동현/황정환 기자 3code@hankyung.com